1981-1990 역사


1981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전년에 비하여 세 배 이상 증액된 2,100만 달러의 연구비가 투자되기 시작했으며 애플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여 및 사용제(Loan-To-Own Program)가 발표되어 각 사원들은 AppleII+를 대여하여 집에서 사용하다 1년이 지나면 각 사원들의 소유가 되는 제도가 실시되었다.


2월
AppleIII는 애플 제품 중 유일하게 광고를 계속하였지만 전체 매출액의 3% 정도만 신장하는 부진을 보였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AppleII는 꾸준한 판매세를 지탱해 나갔다. 이러한 사내 요인에 의해 마이클 스코트는 애플사 내부 정리로 40명의 인원을 감축시키고 프랑스 파리와 영국의 슬라우에 애플 유럽 본부가 설치되었다.



3월
최고 경영진이 개편되어 마이크 마큘라가 마이클 스코트에 이은 대표로 선출되고 스티브 잡스가 마큘라에 이은 의장직을 맡게 되었으며 스코트는 부의장직을 맡게 되었다. 애플사 최초의 미국 전역 로드쇼인 ‘애플 엑스포’81’이 개최되었다.



4월
시스템 본체의 판매 성장과 더불어 주변 장치에 대한 사용자들의 욕구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프린터, 모뎀 그리고 기타 주변 기기를 다루는 액세서리 제품 분과가 설치 및 운영되었다.



5월
AppleII 사용자들이 파스칼 및 포트란으로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애플 랭귀지 카드가 발표되었고 AppleII를 1,400개 이상의 과학 및 기술 기긱들과 연결 시킬수 잇는 IEEE-488 인터페이스 카드가 발표되었다. AppleII는 고등 교육 기관과 연구소를 위한 네트웍 기종으로 선정되어 AppleIII의 부진을 계속 만회해 나갔다.



7월
애플사는 딕 카벳(Dick Cavett)이 진행하는 유선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하였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로 싱가포르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였다.



8월
거대 기업인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 IBM 개인용 컴퓨터를 발표하였다. 애플은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이 새로운 경쟁자를 전면적으로 환영한다는 광고로 “Welcome IBM, Seriously.”라는 문구를 싣는 여유를 보였다.



9월
애플의 최초 저장 장치인 5MB의 Profile하드 디스크가 3,499달러의 가격으로 발표되었다.



11월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한 AppleIII를 발표하고 전세계적으로 3,000개의 애플 딜러가 조직되었으며, 그 중 1/3업체가 공인 서비스 센터로 지정되었다. 처음 기록된 연간 리포트에는 총 30만대 이상의 AppleII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며 애플사 인원은 2,500명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40여 개의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발표된 것 외에도 애플 사에 대한 일반 인의 인지도가 이전의 10%에서 80%로 향상되는 등 시장 점유율을 계속해서 늘려 갔다.



1982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연구 개발비가 전년비 81%가 성장한 3,800만 달러로 증액되어 애플사의 연구 개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즈음에 100여개 이상의 회사가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였는데, 애플사는 65만 대의 시스템을 시장에 보급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애플 프로그램 개발자로는 1,00명 이상이 종사하여 만 개 이상의 소프트웨어가 생산되었으며 60여개의 회사가 AppleII 주변기기를 생산, 판매하였다.


7월
애플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2,195달러에 판매되었다.



8월
애플 사는 미국 세관이 외국의 AppleII호환 시스템에 대한 통과를 보류할 것이라고 발표하여 저가의 외국산 시스템에 대한 보호막을 치기에 이르렀다.



11월
애플사는 연매출 10억 달러를 달성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판매 회사가 되었고, IBM의 반격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이 시기에 미국 시사 잡지인 타임지에는’컴퓨터의 해’ (The Year of the Computer)라는 제목으로 컴퓨터를 올해의 주제로 선정하는 등 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한편, 16비트 프로세서로 무장한 IBM PC는 빠른 계산 속도와 방대하고 확장 가능한 운영 환경, 그리고 시스템 내부를 공개함으로써 개발자 및 비지니스 시장에서 환영받기 시작하였으며, 미 정부 및 세계 각국에서 표준 컴퓨터로 지정되어 Apple 컴퓨터를 전면적으로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AppleIIe라는 신기종 및 여러 주변 기기와 함께,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인 리자(Lisa)가 발표되었다. 리자는 잡스의 딸 이름으로 1MB의 램과 16KB의 롬을 탑재한 모터롤라 68000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현 매킨토시의 원형을 이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하고 마우스를 사용하였다. 1970년대에 제록스(Xerox)사의 팔로 알토(Palo Alto) 연구소에서 창출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메모리와 빠른 처리 속도가 필요했는데, 80년대에 들어 애플사에 의해 리자가 탄생됨으로써 실용화의 기치를 올렸다. 리자를 설계한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인 빌 앳킨슨(Bill Atkinson)과 리치 페이지(Rich Page) 두사람은 스트브 워즈니악이나 로드 홀트 등과 함께 획기적인 기술 업적을 이룬 애플인이라는 애플 펠로우(Apple Fellow)로 선정되었다. 애플은 열두 곳의 유럽 판매망을 이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월
근대적인 개념의 새로운 시스템인 리자는 1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과 느린 속도, 그리고 AppleII나 IBM PC와의 호환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폐쇄적인 설계로 인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함께 발표된 AppleIIe는 AppleIII의 개발에 회사의 모든 관심과 힘이 집중된 가운데 몇몇 뜻있는 개발자들이 경영진과의 마찰을 빚어가며 비밀계획으로 추진된 결과의 소산으로 1,359달러의 가격으로 AppleIII에서 리자로 이어지는 부진을 만회하며 애플 사용자들의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IBM PC의 공세가 거세어지면서 애플사는 AppleIIe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심각할 정도로 격감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애플 컴퓨터를 팔던 상점들은 문을 닫거나 IBM PC를 판매하는 상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4월
애플 컴퓨터의 판매가 부진한 것에 당황한 스티브 잡스는 보다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펩시 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애플의 새로운 의장이자 대표(CEO)로 영입하였다.


5월
애플사는 미국 경제계 시사 잡지인 Fortune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에 411위로 랭크되었으며 교육용 시장 공략을 위하여 아이들을 위한 애플 프로그램 (Kids Can’t Wait)이 발표되어 그해 9월까지 1만대의 AppleII 컴퓨터가 캘리포니아에 보급되었다.



6월
100만번째 AppleII가 발표되어 ‘Kids Can’t Wait’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며 리자의 개정판 시스템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 연구가 계속되었다.



7월
애플과 제네랄 일렉트릭 신용 회사의 계획이 시행되어 구매자들은 애플사 제품의 구매시 크레디트 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애플 고용자들은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EVA(Employee Volunteer Action)단체를 결성하였다.



10월
프로그램 개발의 활성화 및 사용자 서비스책의 일환으로 애플 관련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인 APDA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많은 개발 업체의 호응을 받았다.



11월
워드 프로세서,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 등의 어플리케이션이 하나로 합쳐진 통합 프로그램인 AppleWorks가 발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12월
AppleIII의 기능을 보완한 AppleIII+ 컴퓨터가 두 배의 해상도를 자랑하며 발표되고 도트 방식의 ImageWriter가 발표되었다. 애플은 고등학교와 K-12학생을 위한 전국적인 컴퓨터 경진 대회의 스폰서가 되어 교육용 시스템으로서의 애플을 계속적으로 홍보하는 마케팅에 주력하였다.


1984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애플사가 5년 동안 개발에 몰두한 새로운 야심작인 매킨토시가 1월 24일에 발표되어 미국 전역에 방영되는 슈퍼볼(SuperBowl) 경기에 매킨토시 광고를 방영하였다. 이 최초의 매킨토시에는 128KB의 램과 64KB의 롬, 400KB 용량의 3.5″ 플로피 드라이브가 장착되었으며 2,495달러의 가격이 책정되었다.

시스템의 발표와 더불어 조징 오웰의 소설 <1984>를 주제로 하는 매킨토시 광고는 많은 일반인들 및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 외에도 많은 뉴스 시간과 토크쇼에서 언급되어 방송사에 남을 만한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이 광고의 내용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내용처럼 사람들이 독재자인 빅브라더의 통제를 받으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반복적인 일만을 계속하고 있을 때, 매킨토시가 그려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건강한 금발의 여자가 뛰어 들어와 통제 스크린에 해머를 던져 부숴버리며 사람들은 구한다는 내용이다.

매킨토시기 등장하여 자신의 음성으로 “나는 매킨토시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이 CF는 창조적이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매킨토시처럼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가 널리 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잇다. 매킨토시의 개발을 위하여 제프 레스킨을 비롯한 젊은 개발자들은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일주일에 90시간도 기꺼이 일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개발자들의 전격적인 호응 아래 사과 품종의 하나인 매킨토시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매킨토시의 대중화를 위하여 애플은 주요 잡지에 광고를 개제하고, 대학 컨소시엄을 결성하여 24개 주요 대학이 매킨토시를 이용한 프로그램 개발을 약속하였다. 또 한편으로 애플 컴퓨터의 생산을 위해 CA 프레몬트에 공장을 건설하고, 로보트와 자동 조립 라인 등 근대적인 시설을 갖추게 되며 300과 1200BPS급의 게임용 모뎀을 발표하였다.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AppleII는 영원하라”(“AppleII Forever”)라는 주제의 모임이 개최되었고 컴팩트한 디자인의 AppleIIc가 발표되었으며 2,000여개의 딜러가 5만 2,000대 이상을 즉석에서 주문하여 기록을 세웠다. 심혐을 기울여 제작하였던 AppleIII는 판매 부진으로 결국 개발 및 판매가 중단되었다.



5월
딜러들의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애플 서버가 발표되고 아일랜드(Ireland)의 콕(Cork)에서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을 위한 다국어 매킨토시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였다.



7월
애플사는 사용자의 반응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정책으로 인하여 소비자 명예전당(Consumers Digest Hall of Fame)에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8월
AppleIIc가 미국의 산업 디자인 협회가 수상하는 우수 산업 디자인상(Industrial Excellence Award : IDEA)을 수상하였다.



9월
오리지널보다 놀랍도록 확장된 기능을 지닌 Macintosh 512K가 3,195달러의 가격으로 발표되었는데 사용자들과 언론으로부터 그 방대해진 운영체제로 인해 “뚱보 맥(Fat Mac)”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1월
애플은 뉴스위크지의 광고면을 할애하여 ‘매킨토시 테스트’프로모션을 실시하여 20여만명의 사용자가 하룻동안 매킨토시를 가정으로 대여받을 수 있었는데, 이 광고는 ‘광고세대(Advertising Age)”라는 잡지에 의해 그 해 베스트 10 프로모션 광고로 선정되었다.



1985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제 19회 슈퍼볼 대회에서 메인 스타디움에 애플사의 상표가 새겨진 시트큐션을 기증하고 ‘나그네쥐(Lemmings)’란 타이틀의 새로운 광고를 시작하였다. 애플사 레이져 프린터인 LaserWriter와 네트워크 시스템인 AppleTalk이 발표되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들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을 유도햇다. 스티브 잡스는 다른 개인용 컴퓨터와의 자유로운 연결성을 발표하는 ‘IBM과의 데탕트’를 선언했다. 매킨토시의 전신 기종이라 할 수 있는 리자가 MacintoshXL로 개명되었고 애플사는 각종 잡지에 의해 베스트로 선정되었는데 어드버타이징 에이지지에서는 스컬리를 최고의 광고인(‘Adman of the Year’) 인포월드지에서는 매킨토시를 최상의 하드웨어(‘Hardware Product of the Year’) 에스콰이어지에서는 잡스와 워즈니악을 최고의 신세대(‘Best of the New Generation’)로 선정하였다. 매킨토시에 대한 커다란 호응과 함께 애플사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스컬리가 이후 시기를 애플의 최고 위험 시기로 경고하는 등 컴퓨터 전업계가 불황 사태로 돌입하였다.


2월
잡스와 워즈니악은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미국 기술 메달을 수상하였는데도 워즈니악은 가정용 비디오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애플사를 퇴직하였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애플 기종이 매킨토시에 밀려 점차 소외당하게 되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의 가정용 상품을 생각해 냈다.”며 실리콘 밸리 남족의 로스카토스라는 도시에 홈비디오 시장을 겨냥한 “CL9″이라는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애플사로부터 독립을 하였다. 애플사는 워즈니악의 회사에 대한 후원을 약속하는데, 이는 애플 컴퓨터에 대한 공로와 기존의 매킨토시와 대립되지 않는 영역의 사업 분야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3월
AppleIIe가 새로운 네 개의 고성능 칩으로 개선되고 애플사의 종업원 수가 5,700명을 넘어선 기록을 세웠다. 이에 반하여 제조 공장은 시스템 재고과다로 1주일간 휴무에 들어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4월
애플사는 초중등 학교 교사를 위한 컴퓨터 교육 장학금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판매 1년 동안 40만 대의 AppleIIc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Macintosh XL이라 불리던 매킨토시 시스템의 전신인 리자는 단종되고 ImageWriter, 20MB하드 디스크, 개인용 모뎀이 새로 발표되었다.



6월
전세계적인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불황 사태에 직면하게 된 존 스컬리는 애플사의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전체 종업원 수의 20%에 이르는 1,200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시스템 생산 공장은 6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다. 스티브 잡스도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새 제품의 판매 전략 수립을 위한 마케팅 분야를 맡게 되어 스컬리와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유렵 최초의 대학 컨소시엄이 스웨덴에서 결성되어 대학 중심의 매킨토시 보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7월
현재도 중요한 매킨토시 통신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애플사, 딜러, 개발자, 판매인들 간의 전세계적 메일 및 정보 네트워크인 애플 링크 (AppleLink) 서비스가 개시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돕기 위해 특별교육 센터가 설립되었다.



8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정책 주의에 항의하는 의미로 애플사는 남아프리카에 대한 시스템 공급을 중단하였으며, 6월에 단행한 인원 감축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를 연결시켜 주는 보조기관은 감원했던 인원의 90%에 새 직장을 열어 준 뒤에 폐쇄되었다.



9월
이전까지 사장인 스컬리와 심심찮은 의견 대립과 마찰을 빚어왔던 애플 창설의 전신인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컴퓨터 회사를 차리고 애플사를 그만두었다. 5명의 애플 개발자와 함께 탈퇴한 잡스는 학생과 교수들을 위한 교육 시장을 목표로 하여 혁신적인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목표로 설립된 넥스트(NeXT)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쳐를 결정하고 컴퓨터 개발에 돌입하였는데, 애플 사는 잡스를 상대로 계약 위반 및 회사 기밀 탈취 등을 내용으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소송은 그 후 양사의 화합으로 종결지어졌고 1988년 10월에 검은 색상의 정육면체 큐브 형태를 지닌 넥스트 기종이 발표되었다.



11월
미국과 소련이 두 정상인 레이건-고르바쵸프 회담때 낸시 레이건 여사는 스위스의 대학교에 AppleIIe를 기증하였고 싱가포르의 생산 공장은 그해 최고의 생산성 부문상을 수상하였다. 교육을 위한 애플사의 생산품과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를 위한 교육 자문협회가 창설되었다.



1986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1년간의 대외적 불황과 사내의 변화를 겪은 애플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애플 월드에서 본격적인 대중용 시스템으로 Macintosh Plus와 LaserWriter Plus를 발표하였다. (이 시스템들로부터 국내에 소개되어 판매되었다.) 애플사는 교육 시장을 위한 서비스를 위해 특정 딜러 상대의 네트워크 계획이 발표되었고 미국 내의 각 학교에서 중고 Apple, IBM, Tandy, commodore 등의 개인용 컴퓨터를 매킨토시로 교환해 주는 보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2월
애플사는 추후 생산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조를 설계하고 개발을 가속화시키려는 목적으로 1,600만 달러에 상당하는 크레이 사의 X-MP/48 슈퍼 컴퓨터를 도입하였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크레이 사는 자사의 슈퍼 컴퓨터 설계를 위하여 매킨토시를 도입하였다.)



3월
영국에서 애플사 시스템과 솔루션만을 취급하는 애플 센터가 설립되어 매킨토시 유통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4월
기존 기종의 용량과 파워 등에서 기능을 보강시킨 새로운 Macintosh 512K가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An Apple for the Teacher’란 이름으로 교육자를 위한 특별 할인 판매가 6개월간 실시되었다. 애플사는 자사의 공인 딜러를 2,600개에서 2,000개로 줄이고 매킨토시 일본 버전 시스템인 간지톡(KanjiTalk)이 발표되었다.



8월
애플 개발자 프로그램인 APDA가 실행되었다.



9월
강화된 그래픽과 사운드, 확장된 메모리로 구성된 AppleIIGS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기능이 보강된 IIGS는 현 매킨토시와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는 애플톡 단자를 지니고 비디오 디스플레이어와 연결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발표되고 있어서 과거 AppleII의 명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기종으로 대두되었다.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자가 직접 시스템을 사용해 볼 수 있는 전시장이 미국 내 여러 쇼핑 센터에서 개설되자 많은 구매자들이 호기심을 보였으며, 수도인 워싱턴에 영업 본부를 설치하여 정부의 각 부서에 매킨토시 시스템을 보급하기 위한 계획을 실시하였다.



12월
20만 개 이상의 AppleTalk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범용적인 컴퓨터 네트워크 툴로 이용되었고 애플사 제품은 전세계 80개국으로 수출되었다. 연말 결산에서 애플 사는 전년대비 151%의 성장과 더불어 전체 종업원 수는 85년도 조직 개편 이전의 사원 수로 되돌아 갔다.



1987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AppleIIe가 업그레이드되었고 AppleShare 화일 서버와 AppleTalk PC Card 등 새로운 데스크탑 네트워크 제품이 발표되었다.


2월
새세대 매킨토시 제품들이 로스앤젤레스의 애플 월드(AppleWorld)에서 발표되었다. 확장 가능한 Macintosh SE가 하드디스크와 플로피 디스크를 내장한 구성으로 발표되었고, 1MB 메모리, 800KB 플로피 디스크, 40MB 내장 하드 디스크를 내장한 컬러 시스템인 MacintoshII가 발표되어 매킨토시 제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애플사는 컴퓨터를 교육 수단으로 사용하는 교육자들을 위해 Apple Unified School System과 EPP(Education Purchase Program)을 소개하였다.



4월
애플사는 장애인들에 의해 사용되는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를 늘리기 위해 특별 교육 연합(NSEA)을 결성하고 클라리스(Claris)로 알려진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하였다.



5월
애플사는 로널드 맥도널드 사와 계약을 맺고 미국 전역의 100여 군데 맥도널드 하우스에 매킨토시 시스템을 설치하였다.



7월
국내에 매킨토시를 공급하는 독접 회사로 엘렉스 컴퓨터가 설립되어 Macintosh Plus와 II 기종이 선보여 IBM 호환 기종에 익숙해 있던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8월
애플사는 보스턴에서 개최된 MacWorld 전시회에서 개인용 프로그램 툴인 하이퍼 카드와 멀티 태스킹 OS인 멀티 파인더와 같은 획기적인 새로운 제품들을 발표하였다. 1,399달러의 ImageWriter LQ, 699달러의 AppleFaX Modem등의 새로운 하드웨어도 발표되었다.



9월
AppleII컴퓨터들을 기념하는 AppleFest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어 Apple기종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 나갔다.



10월
애플사는 미국과 아프리카를 위한 자선 단체들과 손잡고 이들을 위한 전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발표하였으며 캘리포니아에서만 50여개의 단체들과 연결되었다.



11월
1988년도 사업을 위하여 협력 업체 지원 전략을 도입하고 오토매틱스, 인터리프, 테크사우스 사 등과 계약을 맺었으며 학생들의 프로그램 이용 및 활용을 증진시키기 위해 전국의 25개 초중등 학교에 1,1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을 시작하였다.



1988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맥월드 엑스포가 350개의 참가 기업과 2만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어 매킨토시의 네트워크와 비지니스 분야의 참여를 강조하였고, 본격적인 전자 출판의 분야의 참여를 위하여 새로운 레이저 프린터들로 LaserWriter IINTX, LaserWriterIINT, LaserWriter IISC와 IBM 호환 기종과 프린터를 공유하고 연결시키는 AppleShare PC가 발표되었다. DEC와 애플은 VAX 시스템과 매킨토시 및 애플토크를 연결시키는 기술 협정을 맺었다.


2월
매킨토시 유닉스 시스템인 A/UX를 발표하고 DEXPO East ’88 전시회에서 애플과 DEC사의 연결성을 집중적으로 홍보하였따. 국내에서는 매킨토시용 한글 오퍼레이팅 시스템인 한글 Talk 4.1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하였다.



3월
애플과 TI(Texas Instrument)사는 TI사의 코프로세서 보드와 확장된 소프트웨어 환경을 갖춘 마이크로 익스플로러 컴퓨터 시스템을 발표하면서 TI사는 애플 사의 큰 협력 업체로 부상하였다. 하드웨어로 매킨토시용 CD-ROM Driver인 AppleCD SC가 발표되고 Macintosh Plus의 가격을 인하하였다. 애플 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 팩커드에 대해 자사의 화면 디스플레이 기법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기소하였는데 이 사건은 산업 전반에 걸쳐 저작권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4월
애플사의 전세계적인 조직이 Apple USA, Apple Europe, Apple Pacific의 세 지역적 단위로 나뉘어졌다.



5월
애플과 컨텀 사는 Apple II 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애플링크 개인용 버전을 도입하였다.



6월
애플사는 IBM 호환 기종과 타기종 간의 네트워크 가능(SNA)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오리온 네트워크 시스템을 인수하여 애플 사가 네트워크 환경을 표준을 설립하는 데 큰 기여를 하도록 기반이 조성되었다.



7월
애플토크 네트워크 기기를 업드레이드시키고 DEC와 네트워크 환경 분야의 개발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애플 스캐너가 새로 발표되었다. 휴스턴의 자연 과학 박물관에 학생들이 우주 공간에서의 과학 및 수치 실험을 쉽게 할 수 있는 챌린지 센터가 설립되었다.



9월
성능이 보강된 Apple IIc Plus가 발표되고 애플 IIGS를 위한 업그레이드된 OS인 GS/OS가 발표되었다. 매킨토시 최초로 모토롤라 68030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1.44MB의 수퍼 드라이브를 장착한 강력한 시스템인 Macintosh IIx가 발표되었다. 슈퍼 드라이브를 통하여 매킨토시에서 Apple II와 IBM기종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발전이 이루어졌다.


1989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매킨토시 최초의 모토롤라 68030과 68882 프로세서 장착 포터블 시스템인 Macintosh SE/30이 발표되었으며 프로그래밍 언어인 MPW(Macintosh Programmers Workshop) 3.0을 출하하여 매킨토시 분야에 있어 그 개발의 효율성을 강화시켰다.


3월
21인치와 15인치의 두 흑백 모니터가 발표되고 모듈러 타입의 68030 시스템인 Macintosh IIcx가 발표되었는데 컴팩트한 디자인과 고성능으로 인하여 많은 사용자들에 의해 호평을 받았다.



4월
매킨토시 네트워크 환경을 확장시켜 주는 시스템 소프트웨어인 통신용 툴박스가 발표되어 통신 프로그램의 작성과 사용을 용이하게 하였으며 레이아웃, 프린터 관리, 가상메모리 등의 미래형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발표하였다.



6월
2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컴퓨터를 학교에 기증하여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신상품으로 12가지에 이르는 네트워크 관련 상품들의 기능을 보강시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탁상출판, 개인용 프리젠테이션 및 멀티 미디어를 지원하는 마케팅 캠페인을 실시하였다.



7월
네트워크 상에서 구현되는 Apple IIGS를 위한 최초의 16비트 OS인 시스템 소프트웨어 5.0이 발표되었다.



8월
Macintosh SE상에서 1.44MB 용량의 FDHD Super Drive를 표준화하고 해당 가격을 상당분 인하하였다.



9월
이안 다이어리를 애플 사 부사장 및 극동 아시아 담당 애플 패시픽의 대표로 취임시켰다. 새로운 매킨토시 모델로 현재까지의 매킨토시 실패 기종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매킨토시 포터블과 25MHz의 속도를 지닌 고성능 엔지니어링 시스템인 Macintosh IIci를 발표하였다.



12월
VAX/VMS를 위한 매킨토시와 CL/1 개발자 키트를 발표하여 다양한 호스트상에서 매킨토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제록스 사에서 자사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무단 도용했다는 주장으로 애플 사를 기소하였다.



1990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2월
미국 내에서의 부진한 성장을 이유로 영업과 마케팅 관련 400명의 종업원이 해임되었으며 Macintosh SE, SE/30, LaserWriter II Printer의 미국 내 가격을 인하하였다.


3월
애플 사 전 제품에 대한 보증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고 40MHz 속도에 68030 프로세서를 장착한 Macintosh IIfx를 발표하였다. 미국 지방 법원은 제록스 사의 애플 사에 대한 소송 대부분을 기각시켰는데 이는 한때 마이크로 소프트 사 등에 대한 애플 사의 패소와도 관련이 있어 주목을 끈다.



6월
디지털 월드 전시회에서 기존 버전보다 100여 가지의 새로운 기능들로 보강된 하이퍼카드 2.0이 선보여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7월
새로운 저가격의 레이저 프린터인 PLW SC와 NT가 발표되었으며 매킨토시 개발의 전설적인 주역이었던 빌 앳킨슨, 앤디 허츠펠드, 마크 포랫 등이 제너럴 매직이라는 모험 회사를 창설하였다.



9월
차세대 매킨토시 시스템 소프트웨어 7.0 베타 버전이 개발자들에게 공급되었다.



10월
기존의 고부가가치 마케팅 전략을 수정한 애플 사의 전략에 따라 저가격의 Macintosh Classic, LC, IIsi가 발표되어 개인 사용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매킨토시 열풍을 몰고 오는 기폭제가 되었다. Classic의 경우는 파격적인 저가격대의 실현과 가정용 시스템으로 손색없는 기능으로 미국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으며 LC또한 저가격대의 컬러 시스템으로 인정받았다.



12월
변함없는 8비트 애플 기종에 대한 지원 사업 중 하나로 Apple IIGS를 위한 하이퍼카드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