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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최고의 제품, 조너선 아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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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ProfilesFEBRUARY 23, 2015 ISSUE

The Shape of Things to Come


How an industrial designer became Apple’s greatest product.
BY IAN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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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much of our manufactured environment testifies to carelessness,” Ive says. Things are “developed to be different, not better.”
CREDIT

PHOTOGRAPH BY PARI DUKOVIC


I. LAUNCH DAY


10대 시절 럭비를 즐겨하고 지금도 다부진 몸을 갖고 있지만 마치 남의 몸인 양, 조너선 아이브 경(47세, 애플디자인실 수석부사장)은 최근 스스로를 "정말, 정말 피곤하다"거나 "항상 걱정스럽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애플 디자인실의 알루미늄 의자나 국가원수급을 위한 자동차 Bentley Mulsanne의 아이스크림빛 의자에 앉을 때, 그는 부드럽지만 절반은 아이러니한 한숨을 지었다. 완전히 인정받는 자의 부담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애플을 떠날까 고민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는 잔류했고, 스티브 잡스의 돈독한 친구가 되어 아이맥과 맥북,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고 마감했다. 그러다가 이제 그는 세계에서 제일 가치 높은 회사의 가장 강력한 두 인물 중 하나로 올라섰다.

종종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 애플 사무실로 오는 기나긴 통근길에서 CNBC 라디오를 듣곤 하지만, 수백 수천 애플 직원들이 아이브의 디자인 결정, 디자인 취향에 의존하고 있으며, 갑자기 은퇴라도 하면 애플 주주들에게 어떤 피해가 끼칠지 깨달을 때 불편하기만 하다. (수치로 말해보겠다. 애플주가가 10% 빠질 경우 71억 달러가 사라진다.) 역시 아이브 및 아이브 가족과 가까운 사이인 스티브 잡스의 과부인 로린-파월 잡스는 조니가 예술가 기질을 가진 예술가이며, "예술가라면 이런 짓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제일 먼저 말해줄 양반"이 남편이었으리라 말했다.

9월의 한 아침, 라이브는 Coldplay의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및 영국의 작가이자 배우인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와 함께 애플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한 지방 대학교의 뜰에서 만났다. 창백하지만 넓은 바지에 요리사라도 된듯한 모양새, 그리고 그을린 Clarks 가죽 신발 차림의 아이브는 머리를 짧게 하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그에게 디자인팀에서 성탄절 선물로 준 아이브-플레이모빌 인형과 같은 표정이었는데, 이 7 인치짜리 아이브는 선글래스를 끼고 황백색의 Valextra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 플레이모빌 인형의 사진이 아이브 아이폰의 잠금 화면이었다.

아이브는 머리 위에 손을 문지르며 조용히 얘기중이었다. 그는 나무랄데 없이 세심하게, 단정치 못함과 늦었음을 사과하고 얼굴을찌푸렸다. 그의 20인승 걸프스트림 GV 비행기(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2011년 파월 잡스로부터 사들였다) 승무원들에까지 그는 자신의 톤을 모두에게 확대시키는 듯 해보였다.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친구인 폴 스미스(Paul Smith)는 아이브와의 대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lovely'와 'special', 'so nice'라 적힌 카드를 하나씩 꺼내드는 것처럼 대화했어요. 그의 친절함을 특히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그날 오전 늦게, 신제품과 서비스를 마치 패션기업처럼 일년에 몇차례씩 발표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천여 명의 참가자 중 십 수명이 이 무대 뒤의 뜰까지 초대됐으며, 개중에는 루퍼트머독(Rupert Murdoch)과 Oklahoma City Thunder의 케빈 듀랜트(Kevin Durant), 야후의 매리사 메이어(Marissa Mayer), Beats의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 래퍼이자 사업가인 션 콤스(Sean Combs, 프라이는 나중에 그에게 술을 엎질렀을 때도 자애로웠던 그를 가리켜 친밀하게 "스누프셔니션"이라 불렀다)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날 중국 정저우(鄭州)의 조립라인 100여개는 여전히 비밀스러운 아이폰 신형을 시간당 7,500개의 속도로 만들고있었으며, 시계를 포함, 애플의 새로운 제품에 대한 루머가 아이폰 제조속도와 비슷하게 온라인에 나돌고 있었다. 팀 쿡 애플 CEO는 홀에 가득찬 팬과 기자들, 그리고 온라인의 수 백만명에게 발표를 준비중이었지만, 아이브의 역할은 안개가 낀 오전에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국한돼 있었다. 아이브가 대중에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잡스는 그를 배려했었고, 그 권리를 아이브는 계속 누리고 있었다.

아이브는 런던 억양으로 자기가 수줍음을 탄다고 말했다. 거의 20년 이상 그 상태로 있었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실제 업무에 집중합니다. 제가 할 그 어느 연설보다도 여러분이 더 신경을 써야 할 일을 묘사할 수 있는 훨씬 더 간결한 방법이 있다고 봐요." 침착한 어조였지만 그의 손가락은 마치 손가락 끝에서 검이라도 떼어 내려는 듯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아이브 뒤 저만치에는 마치 스스로 유배라도 간 양, 스티브 워즈니악이 서있었다. 1976년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했던 그는 거의 재떨이 크기의 검정색 스팀펑크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나중에 아이브가 놀리듯이 "그게 뭡니까?"라 물었다.) 한 동료가아이브에게, 지난 간밤에 사람들이 애플스토어 바깥에 줄을 길게 섰노라 말했다. 발표날 새 제품이 나오리라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아이브는 자기가 긴 줄을 섰던 첫번째 경험을 말해줬다. 다섯 살 때 부모가 데려갔던 대영 박물관의 투탄카멘 전시회였다.

그날 애플이벤트에는 10분짜리 영상도 포함돼 있었고, 무대 위에 서기 싫어하는 아이브가 대신 이 영상 안에 등장했었다. 영상 안에서 아이브는 마치 픽사의 유명한 램프처럼 자세를 하고 진심어린 억양으로 말했다. ("너무나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됩니다"라고 IKEA에서 패러디한 광고까지 낼 정도로 유명한 램프다.) 이런 영상은 잡스의 무대 메시지를 강조하는 데에 쓰였으며, 잡스가 없는 지금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쓰인다. 현재 애플 임원진에게 연설 기술이 없지는 않지만, 잡스의 카리스마까지는 역시 무리다. 잡스의 카리스마는 섣불리 따라했다가 회사 단체연수에 나오는 어색한 꼭두각시 춤이 되어버리기 쉽다. 이와 반대로 화면 속의 아이브는 똑같이 질서있고 애플 제품처럼 무균처리된 장소에서 "rational"과 "inevitable"을 거론한다. 애플 웹페이지의 임원소개 사이트를 봐도 마찬가지다. 14명의 남녀 임원들 모두 활짝 웃고 있는데, 회사 내의 아웃사이더인 아이브만은 유독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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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상이 아이브 얼굴을 비추지는 않고 나레이션을 아이브가 맡았으며, 거의 감독과 편집도 아이브가 했다. 애플의 디자인실 19명의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참여했으며, 그들의 면면은 특허 관련 서류에 등장하는 이름 외에 거의 대중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무한대의 마케팅 자원을 갖고 있는 애플과 같은 기업에서 아이브가 영상을 직접 감독했다 함은 아이브의 작업이 지닌 매혹에 대한 결벽증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작업은 잡스 스스로도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오랜 기간 동안 애플 내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다른 기업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애플에서의 일자리를 아이브에게 소개했고, 90년대 초반 애플 디자인 그룹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러너(Robert Brunner)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가 그 권력을 직접 디자인팀에 건네줬으며, 회사의 문화가 됐다고 한다. 다만 90년대 초반은 아직 그 문화가 뿌리박지 못 했던 때였다. 몇 년 전 애플 인턴이자 엔지니어였으며, 최근 커피머신 스타트업을 차린 제레미 퀨펠(Jeremy Kuempel)은 애플 내 회의에 디자이너가 참가한다 함은, 마치 "성당 안에 있는데 신부가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한다. 브러너는 "지금은 조니가 애플의 창조력 영혼을 맡고 있다고 봅니다"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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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의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에이브람스(J. J. Abrams)는 런던에서 "Star Wars: The Force Awakens" 촬영중이었기 때문에 9월 발표에 갈 수 없었다. 그는 나중에 아이브가 애플 소식을 미리 좀 알려줬으며, "서로 작업중인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무엇이 기대할 만하고 무엇이 터무니 없는지 알려줬죠"라 말했다. 발표 전 언론의 호들갑(훔친 부품 사진과 상상한 제품의 실물 크기 모형 등) 대응법을 배운 점이 있다면, 에이브람스는 그런 현상을 즐길 줄 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의 한 이벤트에서 그는 #AppleWatch 해시태그를 붙여서 트위터에 이미지를 하나 올렸다. 그 이미지는 손수 쓴 카드였다. ("Why do I suddenly have this desperate need to own a WATCH? Damn you, Apple!!!") 그런데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새로운 데스스타의 내부를 얼핏 알아볼 수 있게 돼 있다.

몇 주일 전, 아이브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Jaeger-LeCoultre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와 그의 오랜 친구인 호주 태생의 디자이너 마크 뉴슨(Marc Newson)이 보노(Bono)와 공동창업한 자선조직인 Project Red 경매용으로 제작한 시계다. 그들은 시계를 3개 만들고 각각 하나씩 가졌으며, 세번째 시계를 36만 달러에 팔았다. 하지만 지금 억만장자들이 모인 뜰에서 아이브는 아무 것도 안 찼으며, 몇 시간은 계속 안 찬 상태로 있을 터였다. 그는 "우리가 해낸 이 보기 드문 때, 이제 얘기를 할" 때가 곧 온다고 말을 꺼냈다. "좀 이상하죠. 우리가 서있는 지금은 아직 한 번도 안 들어봤거늘,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수 억명이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매우 거대한 보호본능, 그러니까 소유했다는 느낌을 가졌다가 갑자기 내 것이 아니고 다른 모두의 것이라는 느낌 말이죠. '악몽과 같은' 단어는 좀 과장 됐지만 정말 지금은 중요한 때입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가슴 아픈 때라는 말이죠. 너무나 디지털, 그러니까 너무나 2진법스럽습니다."

뉴슨이 와서 아이브, 그리고 파월잡스와 한참을 속삭였다. 실내로 들어가기 전, 아이브는 파월 잡스의 23살 된 아들, 리드(Reed)와 인사를 나눴다. 리드는 이제 그때 나이의 아버지를 빼다 닮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브는 그를 안아주고 "아!"라 외쳤다.

홀 안에서 아이브는 앞자리에 앉았고 왼편에는 마크 뉴슨, 오른쪽에는 크리스 마틴이 앉았다. 팀 쿡이 무대 위에 올랐고, 청중은 새로 디자인한 두 가지 아이폰 및 새로운 터치스크린 지불 시스템에 환호했다. Tupperware나 정원 호스를 갖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정보광고처럼, 이 영상은 주머니로부터 신용카드를 꺼내어 쓰는 어려움을 보여줬다. 그리고나서 쿡이 전임자의 유명한 발언, "One more thing"을 외쳤다. 그러자 눈앞의 하얀 공간을 통해 보석이 등장했고, 아이브가 "그 기능 만큼이나 너무나 단순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물건"이라 얘기하고 있었다.


II. THE STUDIO


몇 주 전 어느 날 아침, 애플 본부에서 아이브는 1997년의 애플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었는지를 회상했다. "출근하기 전 읽는 기사가 모두, '포위된 컴퓨터 기업, 애플'을 제목으로 달고 있었어요." 당시 서른 살이었던 아이브는 애플에서의 업무가 이제 5년 째 되던 해였으며, 산업디자인 책임을 맡고 있었다. "커다란 애플 로고에 가시관을 씌우고 밑에다가는 '기도합시다'라 적은 Wired 표지기사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요. 그냥 죽거나 인수나 당해라는 의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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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론한 Wired 기사는6월호 기사였으며, 12년 전 애플을 떠나 Pixar와 NeXT를 창업했다가 애플 CEO로 돌아와 길버트 아멜리오(Gilbert Amelio)를 몰아냈던 잡스가 돌아왔다. 잡스와 아이브는 첫만남부터 강렬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그런 만남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전혀 기억 안 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딱, 손가락을 튕겼는데요. 이거 참 기묘하더군요. 우리 둘 다 어느 정도는 좀 특이했으니까요. 그런 거에 익숙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하여 아이브는 주머니 안에 사직서를 품고 있었다. 실제로 잡스의 첫 반응은 새로운 디자이너 영입이었다. 그는 IBM에서 ThinkPad를 디자인했던 리차드 새퍼(Richard Sapper)에게 검정 시가 박스를 건네며 접근했었다. (새퍼는 끌렸다고 말했지만 그는 IBM 자리를 떠나서 "작고도 작은 회사"에 들어가기가 좀 꺼려졌기 때문에 거절했고, 그 결정을 좀 후회했다.) 잡스는 또한 80년대 애플의 산업 디자이너였던 하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와도 만났었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에슬링거는 아이브를 포함한 애플의 기존 팀이 "큰 재능을 갖고 있으며, 올바른 리더십만 있으면 경쟁력을 지닐 것"이라 잡스에게 말해줬다고 한다. 아이브보다도 더 디자인 권위자임을 과시하는 에슬링거는 잡스에게 애플이 보다 "디지털-소비자 트렌드를 발전 시키는 데에 재집중"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에 일어난 일에도 한 몫 했다는 얘기다.

당시 디자인팀을 방문했던 잡스를 아이브는 이렇게 기억했다. "잡스가, '제기랄. 당신 별로 효과적이지 않지?'라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칭찬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 하더라도 디자인팀의 작업에 가치가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방문하는 동안 잡스는 점차 더 느긋해 했고,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정말 기뻐했었다고 한다. 아이브에 따르면 그날로 그들은 아이맥이 될 컴퓨터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 곧 애플은 “Think Different” 캠페인도 시작했고, 아이브는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델이 한 일에 대한 대응이 아닌 과감한 방식"으로 여겼다고 한다. "제 직관은 좋지만 제가 느끼는 바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별로죠. 그점이 어려워요. 스티브가 지금 여기 있지 않아서요." (잡스 추모식에서 아이브는 잡스를 "나의 가장 가깝고, 나의 가장 충성스러운 친구"라 불렀다.)

애플의 1층 디자인실의 한 구석, 나무 그림자 밖에 안 보이는 투명한 창문 앞에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그의 사망 이후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꼭대기의 스티브 잡스 사무실은 4층 짜리 평범한 건물 여섯 채로 이뤄진 애플 캠퍼스 안에 있으며, 주변에는 잔디밭이다. Infinite Loop 거리에 세워진 애플 캠퍼스는 1990년대 초에 세워졌으며, 잡스의 사무실이 있는 One Infinite Loop와 아이브의 연구실이 있는 One Infinite Loop 사이가 복도로 연결돼 있다. 아이브가 처음 스튜디오로 안내했을 때, 그는 빌딩 모두가 다 비슷하게 연결돼 있다고 언급했다. 그랬더니 옆자리 동료가 아이브의 말을 수정했다. 원하고 투만 그렇다고 말이다. 아이브는 정말이냐 물었는데, 이 광경이야말로 애플 세상에서 디자인실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새로 근교에 짓고 있는 캠퍼스(반지 모양의 원형이며 직경 1,600 피트이다)는 아마 함께 일하는 장소로서 거대한 상징적인 연결망을 가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

애플 디자인실 방문 초대는 흔치 않은 일이고, 심지어 애플 직원들조차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건물 내부에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지고 시각적인 에어로크와 같은 10 피트 길이의 대기실이 놓여 있다. 들어가 보면 사무실장인 하퍼 앨릭젠더(Harper Alexander)의 책상만 보이는데 과묵한 애플 기업 문화와는 달리 그는 활발한 트위터 사용자이기도 하다. (그의 트윗 사례: “애플 디자인실에서 COUNTING CROWS와 HOOTIE를 틀고 있습니다. 여기서 멍청한 유로팝 좋아하면 말그대로 죽은 목숨이에요..”)

그날 아침, Yaz와 The Rapture를 포함한 바로 그 유로팝이 낮게 울렸고, 스니커즈를 신은 직원들은 조용히 움직이며 소곤거렸다. 그날 디자이너인 유진 황(Eugene Whang)을 만났는데, 그는 자기의 두 번째 커리어가 DJ이자 음악 기획자(promoter)이며 자기와 친구가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거리에 있는 Standard Hotel, Le Bain에서 공연했던 음악을 듣고 있다고 일러줬다. 호주 태생의 서퍼인 줄리안 호닉(Julian Honig, 그는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했었다)도 그렇고 동료들 모두 아이브처럼 조용했으며, 그들의 명성은 디자인실 바깥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들의 국적은 다양하고 개개인의 삶은 풍족했으며 명성도 나누고 있었다. 마치 유럽의 유명 축구 클럽과 같았다. 애플에는 디자이너를 지명하여 영입하는 역할만 맡은 고용 전문가 세 명이 있으며, 거의 1년에 1명 꼴로 찾아낸다. 얼마 전, 황은 온라인에 예쁜 하얀 헬리콥터 사진을 하나 올렸다. 사진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나리타에서 도쿄까지 움직이는 새로운 Mori City Air Service, 총 30분 걸리며 고가이지만 가끔은 그 가치가 있다. 좌석은 전통적인 캔버스 천에 에르메스(Hermes) 에디션이 겉천으로 둘러져 있으며,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의자의 주름이 잘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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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황, 그의 부인인 후지카와 마키코, 조너선 아이브 (SFMOMA에서 개최한 아이브강연 때 촬영)

로열블루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이브는 상냥했지만 영국인다운 아이러니는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좀 나중을 위해 아껴두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전문적이지도 않기는 하지만요." 대화중 그의 매너는 좀 불안할 때도 있었다. 다정한 정중함이 자살방지 상담가처럼 들릴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라든가 "좋은 비행이기를 정말 바랍니다."와 같은 말은 특정한 주제에서 일반적인 주제로 옮길 때 나왔다. 생각을 내뱉은 다음 안전한 근거를 찾으면서, 그는 자기 답변을 고르고 또 고르거나 한숨을 쉴 때도 있었다. 첫 시도에서 그는 자신의 첫 25년 인생을 60개의 단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오프 더 레코드를 확인 받고서야 자기가 읽고 있던 소설이 뭔지도 알려줬다.

아이브는 잡스가 아멜리오를 대체하기 전, 애플 디자인실에서 아이맥과 같은 기기를 작업해도 회사로부터 전혀 흥미를 받지 못했다고 그날 아침에 말했었다. 놀라운 말이었다. 아이브는 자신의 고용주들에 대해 항상 공손했기 때문이다. (1997년에 나온 한 책에서 아이브는 이런 말을 했었다. "길버트 아멜리오는 애플 역사상 그 어느 CEO보다도 산업디자인에 더 많은 지원을 주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지금 순간 애플에서보다 더 흥미로운 곳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기업의 충성 서약의 산물일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노출을 불편해 하고 진중한 사람답게 사소한 이야기거리에 대해 저항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효과는 같다: 아이브의 기준에서 볼 때, 개인적인 이야기는 말할 가치가 없다. 그의 과장스러운 겸손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브 자체가 애플이라는 진실 때문에 좀 복잡해졌다.

대기실을 지나자 아이브는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며 말을 꺼냈다. "우리가 얼마나 실용적인지에 대해 정말로,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봐요.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예전 방식이나 전통적인 방식이라 하실 수 있을 테고, 혹은 매우 효율적이라고도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탁자와 벤치가 있는 개방형 부엌이 나왔다. 왼편에는 빈티지 Faema 에스프레소 머신과 “100 Superlative Rolex Watches”, Kartell 카트 디자인으로 유명한 조 콜롬보(Joe Colombo) 연구서와 같은 책 100여 권이 꽂혀 있는 서가가 있었다.부엌은 개별 작업실로 연결됐고,오른편에는 십여 개의 오크로 만든 작업대가 잘 정돈된 채로 놓여 있었다.바닥도 물론 반짝반짝한 콘크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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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대략 3,000 제곱피트 정도였지만 외부로 알려진 명성을 통해 이 방은 "동굴"로 알려졌다. 끝에는 유리벽과 함께 8피트 높이의 CNC 밀링머신 3대가 놓여 있었다. 이 머신이 플라스틱과 금속을 갖고 모델과 프로토타입 일부를 만든다. 아이브가 21세기 초, 이 공간을 디자인했을 때, 그는 이 머신들이 작업실 안에 소음과 먼지를 들여 보내면서 디자인실과 통합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실제 물건을 만들죠. 이게 우리 하는 일이잖습니까." 밀링머신은 디자인실을 작업실로 바꿔주는 효과를 낸다. 아이브가 볼 때 한 재료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모를 때 질 낮은 산업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한다.

작업대는 책상보다 높지만 그들이 디자인한 애플스토어 테이블보다는 약간 낮았다. 한참의 연구 끝에 나온 이 높이는 앉아서 하는 연구와 서서 둘러보는데 모두 어울린다. (후에 아이브는 셀프-패러디를 감수하고 "단순함과 단정함"의 결과라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은 물론 진공청소기도 판매하며 천여 명의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지만, 애플의 의도는 방 하나에서 다 알아볼 수 있다. 탁자 하나당 제품, 혹은 제품의 일부나 재품 개념 하나이며, 제조 일정이 맞춰진 것도 있고 3년에서 5년 이후에나 나올 예정인 것도 있다. 아니, 아예 안 나올 수도 있다. 전직 람보르기니 디자이너인 호닉은 탁자가 여러가지, 혹은 아주 많은 아이디어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특정 기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그럴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문제가 해결된다. 호닉은 활짝 웃었다. "기본적으로는 승자가 생긴 겁니다. 집단적으로 뭐가 최고인지 정하니까요." 디자이너들은 모델과 재료를 만지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종종 애플 엔지니어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잡스는 거의 매일 디자인실에 들리곤 했다고 한다. 한 시간 전에라도 들이닥쳤다면 아마 미래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몇 개 탁자에 회색 실크 천이 덮여 있었고, 미래는 전자 주전자보다 더 크지 않으리라는 점만 알고 있다.

다만 문 근처의 탁자를 덮고 있는 천은 이상하리만치 팽팽했다. 아이브가 천을 만지며 얘기했다. "사실은 좀 복잡한데요. 나중에는 그러려니 할 겁니다. 지금은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군요. 장담해요."

장식 없는 벽과 먼지가 묻어 있는 환경을 지나자,선반 위에 놓여 있는 Whole Foods 너츠가 눈에 띄였다. 하지만 방의 미니멀리즘은 비밀주의라기보다는 그저 비밀정책에서 나왔지 싶었다. 아이브의 미학은 소박함이 아니다. 파워어댑터의 자석 접촉부처럼 화려함의 아이디어를 억누르지 않을까 싶으시겠지만, 아이브를 알고 지내는 영국의 디자이너, 리처드 시모어(Richard Seymour)는 아이브가 "감정적으로 따뜻한 모더니즘"을 갖고 있노라 말했다. 역시 친구이자 아이브와는 런던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었던 클라이브 그린여(Clive Grinyer)도 "아이브는 항상 좀 화려했다(bling)"고 말했다. 수많은 애플 제품을 미술관 콜렉션에 추가했던 MOMA의 디자인 및 건축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노트북 뚜껑을 닫았을 때, 1분에 12번 씩 편히 숨쉬는 것처럼 표현되는 빛을 혁신이라 칭찬했다. "조니는 제가 소름끼치게 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침대 탁자에 놓았을 때 사람들을 깨게 만들어버릴 정도니까, 포기해야 했겠죠." (애플은 이 설명에 대해 반박했다.) "동그랗게 고동치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문이 열리자 벽에 붙어 있는 화려한 색상들이 보였다. (나중에 아이브가 설명해줬는데,이곳은 애플워치 영상 스토리보드 작업을 했던 회의실이었다.) 그리고는 아이브 사무실에 도착했다. 유리벽으로 구분된 12 제곱피트 넓이였다. 선반에는 선물로 받은 아이브-플레이모빌과 다른 선물들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파란 천으로 덮어 놓은 스케치북과 실버 에칭이 있었다. 바닥에는 마크 뉴슨의 책상 뒤로 럭비공이 있었다. 벽에 기대어 놓여 있는 액자들은, 침팬지 얼굴을 한 여왕이 그려진 뱅크시(Banksy) 프린트와 디자인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포스터였다. 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Believe in your fucking self. Stay up all fucking night.” 마지막 글귀는 사뭇 경고성 문장이 쓰여 있었다. “Think about all the fucking possi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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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 Dieter Rams

바우하우스(Bauhaus)로부터 영향을 받고 핼쑥하지만 깔끔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가 세운 디자인 원칙의 부록이라 생각할 수 있는 글귀다. (아이브는 람스를 대단히 존경하지만, 람스에 대한 빚은 종종 과장된다. 제조 규모의 차이점을 지적해야겠다. 람스의 브라운은 수 천 개 정도의 제품을 종종 백 만 단위로 생산하지만, 애플의 경우는 제품 하나에 15억 개가 나온다.) 람스의 공식에서 보면, 새로운 제품은 혁신적이고 유용해야 하며, 미학적이고 이해가 쉬우면서 불필요하게 화려하지 않고 솔직하며 오래가야 하고 완전해야 한다. 또한 환경-친화적이어야 하고, "최소한의 디자인"이어야 한다. 아이브는 스케치북을 넘겨 보여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그는 종종 갈색 잉크를 사용했다. 걸쇠처럼 보이는 스케치도 있었고, 길고 얇은 서체로 "가식(pretension)"과 "스마트"를 적은 페이지도 있었다. 애플 경쟁자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페이지에서는 아이브가 "Airbug"라는 단어를 썼다.

방 뒤편에서 아이브는, 아폴로 프로그램에 대한 Discovery Channel의 "Moon Machines"을 보고 있었다면서,우주복을 개발해야겠다고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표가 뭔지 알기도 어렵잖아요." 그리고 나서 그는 디자인실의 작업을 NASA에 비유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처럼 애플 제품은 "인식도 못 할 정도로 발명에 발명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다만 새로운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자멸의 공포로 인한 자기 선전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힘들이지 않게 살아남았다고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수고"를 들였다는 얘기다. 신재료를 찾는 수 년 간의 조사와 아시아 공장에서 제조 방법을 찾는데 들인 수많은 세월 모두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우리는 스튜디오 구석의 더 낮은 탁자로 옮겨갔다.젊은 컴퓨터-디자인 기술자들이 앉아 있었고 잠깐 침묵 끝에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피해야 함을 알아차렸다.우리는 특히 낮은 벤치에 앉았는데 아이브의 동료 디자이너 둘이 합류했다. 30대의 조디 아카나(Jody Akana)는 색상이라는 특이한 전문 분야를 갖고 있었다. 50대의 바트 안드레(Bart Andre)는 애플 직원들 디자인 특허에서 매번 톱에 오르는 인물이다. (둘 다 저널리스트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이브가 안드레에게 "지난 밤 우주복을 봤지"라 말했다.

전임 애플 디자인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러너는 애플 디자인 팀이 같이 놀고 같이 작업하며, 서로를 보호한다 말했었다. 우리 회의에서도 아이브는 Bono가 자기에 대해 Time에 기고한 짧은 기사를 알려줬다 이 기사는 "애플의 디자인 연구실이든 밤거리이든, 성스럽고도 성스러운 아이브와 동료들을 보면, 매우 보기 드문 조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상사를 사랑하고 상사도 그들을 사랑한다. 경쟁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이 똑똑한 사람들을 그저 돈만으로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라 쓰여 있었다. 보노의 친구인 아이브는 이 내용을 "놀라울 정도의 통찰"이라 평했다. 듣기 힘든 칭찬이며 허투로 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의 단합에서 나오는 힘과 전문성은 아이브가 반복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다만 디자인실이 보기만큼 단합 안 돼 있다는 주장이 나올 때는 아이브가 악역을 자처할 때도 있다. 2008년 애플을 떠나 현재 인텔에서 산업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더그 새츠거(Doug Satzger)는 Fast Company에서 "자기 위치에 대해서 조니는 대단히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 스티브를 만날 때면 언제든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말했었다."라 주장했었다. (새츠거는 코멘트를 거절했다.)



아이브는 15년 동안 단 2명의 디자이너가 애플 디자인실을 떠났다고 말했다. 개중 하나는 건강상의 이유였으며, 단결력의 결정적 증거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행복하지 않은 사무 환경이라도 참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새츠거의 발언도, 크게 보면 애플 디자인실을 칭찬하는 발언이었다. 고요한 열정이 밀실공포증이나 까다로운 환경을 만들리라 상상하기는 쉬우며, 회사 내 협상 과정에서 차가운 의도를 가진 조용함 때문에 나오는 불안감도 있다. (아이브를 예전에 상사로 모셨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영국인인 리처드 호워스(Richard Howarth)는 아이브가 일을 주도적으로 하며 거칠다고 말했다. 다만 절반은 농담조로 "무서워서가 아닐까"라 덧붙였다.) 하지만 초조하고 자기-의식적이라 하더라도 아이브가 좋은 사람임은 거의 모두 인정하고 있다. 아이브는 인기투표에서 한 표 빼고 모두를 차지했었다.

팀원들은 하루 12시간 일하며 친구들에게 일을 말할 수 없다.각 프로젝트에는 리드 디자이너가 있지만 모든 프로젝트에 거의 모두가 참여하여 기여하고 공유한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누가 냈을까요? "팀") 아이브는 자기 역할을 디자인 리더십의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다고 평한다. 모든 창조력의 근원은 아이브가 아니며, 그는 단지 동료들의 제안을 평가할 뿐이다. 큰 아이디어는 종종 그로부터 나오기도 하며, 모든 디테일에 대해 그도 의견이 있다. 팀 회의는 일 주일에 두 세 번 정도 부엌에서 열리며, 아이브는 허심탄회하게 논쟁하기를 권장한다. "우리는 뭣보다도 제품을 먼저 놓고 봅니다. 제가 못나고 비율도 안 맞는 뭔가를 만들었다고 해 보죠. 그러면 우리 모두를 믿기 때문에 제가 옛날 것에서 아름다운 뭔가를 꺼내고...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래요. 종종 반복해서 하기도 합니다. 드라마처럼 시즌을 거치죠."

아카나가 지난주에도 한 건 있었다고 말하자 아이브가 물었다. "포장 있잖아요." "아,맞아." 아이브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나빴지."

아카나는 애플워치 골드 버전용 상자 안에 있는 Ultrasuede 가죽이 오렌지-브라운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아이브는 너무 과장됐다고 반대했으며, 오렌지-브라운을 학생 아파트의 카페트에 비유했었다. 그런 즐거운 분위기에서 아카나는 당시 아이브에게 물었었다. "그래서, 싫다는 얘기죠?"

가차 없는 비판이라는 잡스의 취향은 악명 높다. 아이브도 기억한다. 몇 년 전 동료들을 완전히 부수는 광경을 보자, 아이브는 잡스에게 따졌었다. 잡스의 답변이 걸작이다. "왜그리 애매하게 말해?" 모호함은 이기심의 한 형태라는 말이었다. "저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야! 널 쓸데 없이 좋아하기만 바라냐?" 아이브는 격분했었지만 이내 잡스에게 동의했다. "남들이 저를 좋아하게끔 하고 싶은 깊은 욕구때문에, 분명한 피드백을 안 줬으니 저 스스로가 한심해지더군요." 아이브는 잡스의 신랄함에 대해 너무나 많은 얘기가 있다면서 한탄했다. "그의 의도와 동기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설사 잡스가 그를 모호함으로부터 구조했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다.아이브가 상대방 마음 상하지 않게 색상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막 알았기 때문이다. 로린 파월 잡스는 남편에게 아이브가 그런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조니가 크게 좌절한 광경이야 봤었죠. 하지만 그가 그렇게 분노해서 화낸 건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잡스가 아프기 한참 전부터 그러했듯, 아이브가 장애인용 주차장에다 주차하는 광경 또한 상상하기 힘들다.) 아이브도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 바란다. 이 이야기는 자아-비판으로서 잡스에 대한 선제적인 방어로 보인다. 또한 2011년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전기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전기는 적대적이지까지는 않아도 잡스의 불친절한 사례를 담고 있다. 나중에 아이브는 전기의 일부만 읽었다면서, 그 정도만 읽어도 충분히 싫을 만하다 말했다. 부정확한 면 때문이었다. 흔치 않은 수준으로, 아이브는 "제 평가는 더 이상 낮을 수 없습니다"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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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아이작슨

아이브는 전화를 하러 나갔고,안드레가 자신의 일과를 묘사했다.아침 5-6시 정도에 출근해서 기하학적으로 좀 복잡한 물건을 디자인한 다음,밀링머신에 보내서 만든다.그는 이게 취미라 말했지만,아카나는 다르게 답했다. "배면의 스피커 구멍 패턴에 대한 회의가 곧 있거든요.조니라면 '바트,네가 만든 패턴 상자 좀 가져 올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안드레는 책상에서 자기가 컵 받침대로 사용하던 납작한 판을 가져오기로 했다. 하얗고 단단한 합성수지(레고의 재료이기도 하다. 애플 스튜디오는 1년에 천여 개의 모델을 만든다)로 만들었으며, 균등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안드레의 설명이다. "한쪽에서는 재료에서 뺀 음각 모양의 육각형 패턴이 있고, 동일하지만 다른 쪽의 재료에서 뺀 패턴도 있죠. 둘이 상쇄되기 때문에, 둘의 접점은 흥미로운 모양이 됩니다." 안드레는 셔츠로 커피 얼룩을 닦아서 판을 보여줬다.


III. MANAGING NEWNESS


3년 전부터 아이브는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책임까지 맡았다. 서체와 아이콘, 스와이프, 탭 등 애플이 휴먼 인터페이스라 부르는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책임을 맡았다는 얘기다. 2013년 애플은 아이폰 및 아이패드용 iOS 7 운영체제를 출시하면서 전화, 텍스트, 이메일용 사운드를 새로 포함하는 등 전반적인 개수를 단행했다. 이전의 경고음은 Doorbell이나 Duck, Choo Choo처럼 실제 생활에서 나오는 경고음들이었다. iOS 7은 전자적으로 만들어낸 사운드들을 부분적으로 휘호 페르베이(Hugo Verweij)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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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호 페르베이(Hugo Verweij)

페르베이는 네덜란드 출신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아이브에게 고용되기 전에는 "미니멀리스트 벨소리"를 판매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했었다. (자기 블로그에서 페르베이는 애플의 "시끄럽고 허접한" 사운드에 질렸음을 표현했었다.) 새로운 벨소리가 너무 유행을 따른다고, 혹은 너무 유럽스럽다고 싫어하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더 아래 쪽에 있는 "전통적"인 사운드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새로운 사운드가 아이폰을 더 일관성 있게, 유리와 알루미늄, 그리고 헬베티카 노이에(Helvetica Neue) 서체에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해준다는 느낌을 가졌다.



아이브는 새로움을 관리한다.그는 기술 혁신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되, 못생겼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대중시장에 나설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다. 물론 애플도 실수를 저질렀지만 애플의 제일 큰 디자인 비밀은 아마 모욕을 피하기가 아닐까. MOMA의 안토넬리에 따르면 애플의 디자인 개념은 "존중의 신호"이다. "오브젝트에 스며들어 있는 우아함은 모두에게 옳습니다. 그리고 추한 것보다 더 비용이 들어서도 안 되죠."

어느 초저녁, 쿠퍼티노로부터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한 언덕 꼭대기로 갔을 때 아이브는 "우리의 제조 환경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부주의함을 알려 줍니다."라 말했다. 아이브는 그곳의 침실 2개 짜리 집에서 영국인 부인이자 예술 경영 쪽에 있었던, 헤더(Heather), 그리고 10살 짜리 쌍둥이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 그들 모두 "알루미늄"을 영국식으로 발음하며 전자제품 사용 시간을 엄하게 따르고 있다. (몇 년 전, 아이브는 Pacific Heights의 황홀한 전망을 갖고 있는 1920년대식 맨션을 구입한 적 있었다. 앤 게티(Ann Getty)와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이 이웃인데, 현재 이 집은 상당한 리노베이션을 하는 중이다. 아이브 가족은 또한 하와이 Kauai에도 해안가 집을 한 채 갖고 있다.)

우리는 낮은 햇빛을 맞으며 I-280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디자인의 부주의함에 사례가 있는지 묻자, 아이브는 대화 주제를 다시 애플로 돌렸다. 제일 무분별함을 피한다는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그 노력을 항상 숨기지는 못한다고 한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어느 정도, 그러니까 보살핀다는 감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멍청한 믿음이라고들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가능하다는 것. 바로 문화에 대해 작게나마 기여한다는 얘기죠."

아이브는 런던에 기반을 둔 직원으로서 최근에 애플에 들어온 마크 뉴슨과 자신이 디자인 고민으로 "우리 스스로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정과 비용에 맞춰서 개발한다거나 더 나아서가 아니라 달라 보이려고 개발한다는 불평이 있습니다." 그와 뉴슨은 원래 자동차 애호가이며 그들 모두 현대의 자동차 대부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여름마다 그들은 빈티지 스포츠카 전시회가 열리고 실제로 몰아볼 수도 있는 영국 남부의 Goodwood Festival of Speed에 참가한다. "충격적인 자동차가 좀 있어요.누군가의 차는 다른 누군가의 풍경입니다." 밑에 입술 부분이 튀어 나온 은빛 세단이 오른쪽에 있었는데, 아이브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게 사례입니다." 우아하지 않은 그 차가 뒤쳐지자, 아이브에게 디자인을 비판해 보라 요청했다. "당황스럽죠. 안 그래요? 아무 것도 아니죠. 안 그래요? 전혀 맛이 없습니다" 그는 모델 이름도 말하기 거절하며 중얼거렸다. "몰라요. 몰라. 공격하고 싶지 않아요." (도요타의 Ech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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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Echo

우리는 아이브의 검정 Bentley에 타고 있었다. Bentley는 눈에 잘 띄는 럭셔리 자동차치고는 수수하다. 후드가 거의 기울어져 있지 않으며, 견고한 모서리에 맞물려 있는 차의 전면부를 보면 아이브의 왼손에 있는 아이폰 6가 생각날 정도다. 우리는 사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브는 마지 못해 운전 서비스를 받아들였었다. 아이브가 그에게 말했다. "이제 막 1년 지났잖나? 진?"

아이브라면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선호하겠지만, 그도 멋진 건 좋아한다. 그는 Aston Martin DB4도 갖고 있으며, 2도어 짜리 첫 Bentley는 10년 전,스스로의 의심과 정당화를 왔다 갔다 하며 구매했었다. "전 항상 예전 방식 그대로의 Bentley를 좋아했습니다. 이유는 전적으로 디자인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저항하고 또 저항했으며, 생각도 많이 했던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제일 기묘한 형태의 허영심이죠. 이런 식으로 저를 알아보도록 할 수 있잖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제가 또 그렇진 않죠. 그래서 저는..." 잠시 그는 말을 멈췄다. "그래서 좀 불편했습니다." 애플의 운영실 수석 부사장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오래 된 도요타 Camry를 끌고 다닌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아이브가 말하는 이유는 "하느님 맙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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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윌리엄스

Bentley로부터 보는 전경은 건조하고 노란 들판이었고, 아이브는 아름답지 않냐 물었다. "긴 그림자에 해가 나무 끝에 걸려 넘어가고 있어요." 샌프란시스코 북녘의 Marin County 전경이었다.이곳은 영국 남서쪽과 비슷해 보였다. "데번(Devon)과 좀 비슷해요. 그렇지 않아요? 콘월(Cornwall). 엑스무어(Exmoor) 같기도 하고요."

아이브의 부모가 현재 그곳에 살고 있으며, 아이브도 전에 그 동네에 집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런던 중산층이 거주하는 북동쪽 교외의 칭포드(Chingford)에서 자라났다. 집에는 람스가 디자인한 Braun MPZ 2 Citromatic 쥬스 기계가 부엌에 있었다. 아이브는 "어느 부분도 숨겨졌다거나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라 묘사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공구가 익숙했다. "제작소에서 자라난 것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고속도로, 다리, 도요타 등 모든 것이 여기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었다. 그의 뿌리는 노동자 계급이었다. 그의 친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는 숙련된 금속공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마이클은 현재 은퇴했으며, 중학교에서 디자인과 기술을 가르쳤었고, 디자인 교육에 대한 정부 자문관이기도 했다. 아이브의 어머니는 신학 교사였으며 나중에는 치료사가 됐고, 그의 여동생은 런던의 비영리재단의 컨설턴트가 됐다. 마크 뉴슨은 아이브의 성장 환경이 자신과 경제적으로 유사했다고 말한다. "우리 둘 다 딱히 특권층의 배경이 없었습니다. 제가 한 많은 일들이 어렸을 때 못 가져본 것을 가지려는 노력이었죠." 뉴슨은 자신이 디자인한 6천 달러 짜리 Louis Vuitton 배낭을 갖고 다녔다. 제트기 소유자인 아이브는 21살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타봤었다.

마이클 아이브는 아들의 재능이 어렸을 때부터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는 나무와 판자로 만든 기발한 햄스터용 장애물 코스를 기억했다. "놀라운 움직임 감각으로 대단히 정확한" 스쿠바 다이버 그림도 있었다. 조너선이 13살일 때 가족은 Midlands에 있는 Stafford로 이사갔고, 당시 아이브의 별명은 Tiny였다. "그때 키가 다 자라서요." 그는 동네 대표 럭비 선수로 뽑혔고, 필요할 때면 공격적일 수 있었다. 아이브는 웃으면서 설명했다. "예의 바르게 경기를 하지는 않죠. 하지만 팀원으로서 움직여야 합니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팀이 다치니까요." 학교에서 그는 미래의 부인인 헤더 페그를 만났으며, 당시 그의 헤어스타일은 포스트-펑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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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를 안고 있는 아이브 부부

1985년 아이브는 Newcastle Polytechnic(현재는 Northumbria University)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그는 처음으로 맥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느낌을 받았었다. "맥을 만든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 봤죠." 그는 런던의 한 디자인 사무소에서 반년씩 두 번의 인턴을 거쳤고,그의 뛰어남은 곧 분명해졌다.그 사무실에서 아이브를 만났던 클라이브 그린여에 따르면, 아이브는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도 맡았었다고 한다. 그린여는 Newcastle에서 아이브를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그의 거실에서 밤을 보냈는데, 수 백 가지 발포 고무 모델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당연히 모두 하얀색이었죠. 굉장히 작은 차이점이 있었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아이브는 제일 집중하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이 말은 아이브가 잡스를 묘사할 때 아이브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아이브는 어렸을 때 "일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비록 크고 나서 댄스 뮤직에 대한 취향을 기르기는 했지만(게다가 그는 영국 DJ이자 Massive Attack의 멤버인 존 디그위드(John Digweed)와 친구가 됐으며 요요마(Yo-Yo Ma)하고도 친구이다) 어렸을 때 본 영화와 책,나이트 클럽에 대해 묻는 것은 소용 없었다. 1987년 여름, 대학에 다니던 중, 아이브는 Newcastle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헤더와 결혼했다.

그는 전국 대학생 디자인 경진대회에서 두 번을 연속으로 우승했는데, 한 번은 하얀 탁상용 전화기(길다란 핸들을 갖고 있었다)로 상을 받았었다. 1989년 여름, 두 번의 연수 장학금을 받고 최고 학위도 받은 그는 미국으로 여행을 갔었다. 마침 당시 로버트 브러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Lunar라는 디자인 자문사를 차렸었고, 사실 브러너는 아이브를 만난 후, 그를 고용하고 싶어 했었다. 아이브는 열정적이면서도 상냥한 인물이며 그의 포트폴리오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더군요."의이유도 있기는 했다. 브러너의 설명이다. "비록 산업 디자인을 컨셉과 렌더링, 그리고 모델과 온갖 창조적인 것들로 여기기는 하지만, 산업 디자인은 결국 뭔가를 전달하는 겁니다." 아이브는 탁상용 전화기 모형을 가져 왔고, 전화기를 분해하여 내부 부품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었다. 이 모형의 외각은 모형을 토대로 완성할 전화기 정확히 일치했다. 브러너는 "학생들 작품 중에 이런 건 절대로 못 봅니다."라 말했다.

다만 그때 아이브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수 없었다. 이미 인턴으로 있던 회사에서 일하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린여가 런던에서 공동 창업한 디자인 사무소, Tangerine의 세 번째 파트너가 된 아이브의 프로젝트 중에는 상고머리용으로서 이가 긴 이발사용 빗도 있었다. 아이브는 자신이 영업사원으로는 영 아니라고 여겼다 한다. 하지만 디자인 사무소는 새 작업을 영원히 찾아야 하며, 내부 디자이너처럼 회사 디자인을 좌지우지할 일이 없었다. 따라서 일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세상이 또다른 전자렌지를 필요로 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90년대 초, Tangerine에서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아이브의 핵심 고객이 둘 있었다. 영국의 화장실용 세라믹 제조업체인 Ideal Standard가 욕조,타월,세면대 디자인을 의뢰했었다. Bentley 안에서 아이브는 내 노트북에 세면대를 그려줬었다.타원형의 상단이 점점 가늘어지는 구조였으며, 벽에서 약간 각도가 져 있었다. "정말, 정말 단순한 통입니다. 테두리가 두껍기는 하지만 비틀어져 있죠. 전면에서 볼 때는 좀 열려 있고요."

아이브는 태블릿 컴퓨터도 디자인했었다. 1989년 브러너는 애플에 들어가 디자인 팀을 이끌게 된다. 1991년 애플은 첫 번째 랩톱 컴퓨터인 파워북 100을 출시하기 직전이었고, 브러너는 Tangerine에게 모바일 컴퓨팅 컨셉을 디자인해달라 의뢰했다. 실제로는 아이브를 애플로 모셔오기 위한 일환이었다.

라이브는 Ideal Standard와 애플 본사를 각기 방문했고, 두 회사 간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다. 싱크대의 경우, "형태가 기능을 따르지 않았습니다"였다. "형태 자체가 기능이었죠. 모양 때문에 물받이로 기능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브는 형태가 기능이라는 말을 제한적이고도 고상하게 만들었다. "아주 옛날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진정한 감각이 있었죠. 문제에 대해 순수함이 있었으니까요."

"애플 제품들은 정말 복잡하더군요.이렇게 아찔한 자유가 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고요. 물론 아키텍처와 형태, 기능의 특정 문제 모두를 다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단 애플 제품은 여러가지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고, 이 물건이 뭔지 이해하는 데에 완전히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비록 비-전문가를 혼란스럽게 만들 도구와 머신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집적회로는 새로운 수준의 수수께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나서 이게 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의 태블릿 컨셉인 Macintosh Folio에는 스타일러스와 함께 조절 가능한 화면이 있었고, 갖고 다니는 제도판의 개념이었다.



Folio

1992년 봄, 13년간의 보수당 통치 후 노동당이 승리하리라 예상했던 총선 전, Tangerine은 Hull에 있는 Ideal Standard 본사에 화장실을 소개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린여는 지금도 약이 올라 있었다. 세면대 지지대가 무너지면 아이를 죽일 수 있다는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린여가 볼 때는 다른 커다란 세라믹 세면대도 다 마찬가지였다.

Tangerine 파트너들은 캘리포니아의 애플도 방문했다.런던에 되돌아오자 보수당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린여는 더욱 더 풀이 죽었다. "조니는 날씨 좋다고 정말 좋아하더군요."

아이브는 그해 9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얼마 안 있어 그는 노란색 Saab 컨버터블을 사들였다.실리콘밸리는 완전히 자연스럽고 완전히 낙관적이었다. 미국에서 뭘 발견했는지 아이브는 스티븐 프라이에게 "냉소와 회의론이 정말 없다"고 말했었다.

집에 도달하자 태양이 졌다. 아이브는 운전사인 진에게 너무 감사하다 말했고, 나무로 된 문을 여면서 방이 어둠을 사과했다.

애플에 들어온 이후에도 아이브는 외부 프로젝트를 몇 개 맡았었다. 2001년 그는 폴 스미스의 책을 위해 하얀 폴리스티렌 상자를 만들었었다. 2013년에는 아이브와 뉴슨이 Project Red 경매를 위해 170만 달러에 낙찰된 알루미늄 책상을 디자인했다. 한번은 뉴욕의 한 저녁 술파티에서 제이 제이 에이브람스와 동석했었는데, 에이브람스는 아이브로부터 광선검 디자인에 대해 "매우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에이브람스는 "Star Wars: The Force Awakens에 그의 제안이 반영될 겁니다."라 말했지만 어떻게 반영될지는 물론 언급하지 않았다. 불타는 십자가를 방불케 하는 새로운 광선검이 나오는 첫 번째 예고편이 나간 이후, 아이브에게 혹시 저 크로스-가드가 붙은 광선검이 아이브의 아이디어인지 물었었다. 아이브는 그냥 대화일 뿐이었다고 답했다. "크로스-가드에 대해 말한 적은 없어요. 다만 매끈하지 않게 만드는 걸 말했습니다. 덜 정밀하고 그냥 꼬챙이처럼 생기면 재밌겠다 싶었거든요. 다시 디자인한 무기는 보다 옛스럽고 원시적이겠지만 그만큼 뭔가 더 불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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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 파월 잡스

그동안 로린 파월 잡스는 안경과 식기,적절한 조리대의 높이에 대해 아이브와 상담했었다. "그는 비율과 치수 감각이 뛰어나요. 정말이에요. 디자인할 단추나 문, 전등이 필요하다면 그랑 얘기하면 됩니다." 그녀와 대화했던 곳은 그녀가 근무하는 팔로알토의 교육 관련 비영리재단인 Emerson Collective의 사무실이었다. 그곳에는 Arne Jacobsen의 컨퍼런스용 탁자에 컵받침 2개가 있었는데,하나는 그녀의 커피컵용이고 다른 하나는 컵의 플라스틱 뚜껑용이었다.

아이브와 마찬가지로 스티브 잡스 또한 뭔가 만드는 아버지와 함께 자라났었다.잡스는 자신의 제조 환경에 대해 안목을 갖추고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개방적이고 즐거운 매너의 파월 잡스는 스티브를 만나기 전에는 결코 전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스티브라면 천장에 대해 정확한 관점을 가졌을 거예요. 전 문설주에 대해서도 배웠죠." 그녀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문설주들이 좀 두껍고 아마 과도하게 두꺼웠을 겁니다."

잡스 가족의 팔로알토 집은 오랫동안 가구가 없었다.잡스는 잡지나 책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을 찢기는 했어도 책을 사지는 않았다.파월 잡스에 따르면 그는 종종 "알고 싶지 않을 거야"라 말했다고 한다. 메르세데스를 모는 느낌을 망치는 스위치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는 행동 변경을 강요하지 않는 제품을 갈망했으며, 파월 잡스의 표현은 이렇다. "삶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실제로 감사를 느끼는 제품"이다. 파월 잡스는 스티브가 언제나 찾던 것이 바로 그런 제품이었다고 한다. "조니랑 같이 일하기 전까지는 찾지를 못 했었죠... 그들은 정말 행복했어요. 서로를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잡스는 월터 아이작슨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애플에 영적인 파트너가 있다면 그는 바로 조니죠. 조니와 저는 제품 대부분을 같이 생각했고 그 다음에 다른 이들에게 보여줘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각 제품의 사소한 디테일 대부분은 물론 그는 큰 그림도 이해합니다. 게다가 애플이 제품 회사라는 점 또한 깨닫고 있죠. 그는 디자이너만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저를 위해 일하는 겁니다. 그는 저를 빼고는, 애플 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어요." 영국 디자이너인 리처드 시모어는 잡스와 아이브 사이의 유착을 "현자(賢者)-수준의 탐미주의자와 믿을 수 없으리만치 실제로 만들어내는 실천가 간의 결합"이라 묘사했다.

파월 잡스에 따르면 이렇다. "스티브는 스케칭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가 뭔가 실제로 디자인한다는 느낌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 둘 다 그들 둘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봐요." (잡스와 아이브는 기질이 달랐지만 아마 사교성이 부드럽지 못한 점만은 닮았으며, 그들이 같이 이룬 제일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서로 인사하지 않아도 되도록 디지털로 시선을 분산 시켜줬다는 점이다.)

애플 제품을 ThinkPad나 책과 구별해주는 데 도움이 되는 동그란 모서리와 가장자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애플 제품의 범위는 평평한 사각형으로 좁아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살아남은 순수 산업 디자인이 되었다.) 하루는 아이브가 너무니 피곤해서 대화중에라도 잠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는 "원시적인(primitive)" 디자인 기하학을 설명하자 활기를 되찾았다. 컴퓨터 시대 이전에는 흔한 디자인으로서 본질적으로 두 개의 직선이 원 조각에 교차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재료가 허용할 때 한 선에서 다른 선으로 잇는 더 우아한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그는 tangency breaks와 Bezier 표면을 거론했다.이 사실을 파월 잡스에게 말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 외쳤다. "맞아요!바로 그게 전환점이었죠.잊고 있었네." 각 제품마다 잡스와 아이브는 "몇 시간이고" 모서리를 논쟁하곤 했었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과 아이브가 오스트리아-스웨덴 디자이너인 요제프 프랑크(Josef Frank)의 취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제프 프랑크는 곡면형 가구와 꽃무늬 천 디자이너이며,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딱딱한 모서리는 안 됩니다. 인간은 부드러우니 모양도 부드러워야 합니다."



clive_grinyer

클라이브 그린여

클라이브 그린여는 90년대 중반,잡스가 돌아오기 이전의 애플을 방문했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아이브는 "프린터 뚜껑의 디테일"을 작업중이었다. "그는 거의 떠나기 직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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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스타크님의 댓글

오늘은 2/5 만 읽었지만, 브라보~! 입니다.
멋진 번역이군요.

MannerBear님의 댓글

_mk_글도 좋지만 좋은 번역으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park님의 댓글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hunter님의 댓글

긴글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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