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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제조와 말레이시아의 네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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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제조와 말레이시아의 네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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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

Consumer Electronics

An iPhone Tester Caught in Apple's Supply Chain

By Cam Simpson November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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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예술 극장의 스포트라이트 아래,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 필 실러는 제일 기대받고 있던 제품을 막 선보이려 하고 있었다. 이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 사후 처음으로 나온 아이폰이었으며, 실러는 청중의 반응에 편안해 하고 있었다. 모두들 세상에 소식을 알릴 준비가 된 저널리스트와 분석가, 팬들의 무릎 위에는 모두들 퓨터가 놓여 있었다. "여기 서서 모든 곳에서 빛나는 애플 로고를 보니 정말 근사하군요."

조명이 흐려지고 실러가 뒤로 물러서자, 빛나는 아이폰 5가 무대 밑에서 받침대에 놓여 나타났다. 실러는 "절대적인 보석입니다."라 말했다. 그리고나서 실러는 아이폰의 8-메가픽셀 카메라 등 기능을 설명했고, 대형 화면에 한적한 작은 만 사진이 나타났다. "아이폰 5에서 보면 바다가 한층 더 파래 보입니다." 그러자 푸른 잔디밭에 누운 두 소년이 렌즈에게 미소를 비추는 사진이 나타났다. "아이들도 더 행복해 보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아이폰 5로 사진을 찍으면 세상이 말그대로 더 아름다워집니다."

무대 뒤에서는 훨씬 더 기가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계 최대 기업 중 한 곳인 애플의 CEO 팀 쿡은 잡스를 승계하기 이전부터 애플의 공급망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그 규모와 속도, 복잡성 때문에 분석가와 간부들이 이제까지 없던 과감하다 칭했던, 아이폰 5의 발표 및 생산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2년 9월 12일, 아이폰이 미국, 그리고 후에 8개국 시장에 등장할 때 생산된 아이폰 5는 상대적으로 몇 대 안 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100개 국가의 240개 통신사에 팔리게 된 아이폰 5는 첫 석 달 동안 370만 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애플은 모든 아이폰 본체 뒤에 쓰여 있듯, 디자인 기업이지 제조 업체가 아니다. Foxconn과 같은 제조업체가 거대한 규모의 하청 업체들로부터 부품을 받아 조립하는 방식이다. 개중 가장 큰 하청 업체로 Flextronics International (FLEX)가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업체로서 2,800 평방피트 너비의 공장을 대륙 네 군데에 두고 있다. 그 중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남쪽의 산업지역에도 플랜트가 있다. 실러가 거론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다만 Flextronics도 자체의 하청업체망을 갖춰야 했고 여기서의 하청은 구매는 물론 인력도 포함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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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8개의 플랜트와 24개 업체가 애플과 계약을 맺었던 말레이시아의 생산라인 직원 채용은 보통 다음과 같다. 비공식적이고 거의 규율도 받지 않으며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수 천 명의 모집인들이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심지어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이들 일자리가 너무나 인기가 좋기에 제안 받은 이들은 그저 일자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팔려 나간다. 그래서 브로커들이 가족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데(거의 1년 이상치의 월급이다), 이 수수료를 몇 년 상환으로 대출 받아 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아이폰 5의 출하를 위해, Flextronics를 위해 일하는 모집인이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를 8월 하순-9월 초 동안 방문했다. 브로커 넷 중 셋에 따르면 그는 카메라 제조를 위해 1,500명을 급히 찾았다고 한다. 그 정도 대규모의 급작스러운 고용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Sharp Human Resources라 불리는 작은 인력회사 관리자인 슈레스타(Rajan Shrestha)의 말이다. "인력 사무소에서 말하기를 오늘 내로 이들을 보내라더군요."

고용을 위해 고용한 네팔 브로커 넷 중 한 곳인 Transworld Manpower의 관리자인 타파리아(Alok Taparia)는 Flextronics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내겠으며, 노동자에게 수수료를 물리지 말라는(Workers shouldn't be charged) 지시를 보다 분명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파리아와 다른 네팔 브로커들에 따르면 Flextronics가 너무나 많은 인원을 너무나 빠르게 요청했기 때문에, 걸어서만 갈 수 있는 히말라야 산골 마을까지 뻗어 있는 하청 인력업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애플은 자사 공급망에 대한 보고서에서 스스로 언급했듯, 하청 업자들이 언제나 돈을 낸다.

타파리아 등에 따르면 광란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허가를 맡고 있는 네팔 정부 관료인 판다리(Surya Bhandari)은 말레이시아와 네팔 양측으로부터 보통 7일을 요구하는 노동허가를 조속히 내리라는 압박을 종일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은퇴한 그는 압박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들은 또한 애플을 위해 사람을 보내고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니 네팔에도 좋다는 말도 들었다. 이 소식이 카트만두에서 우유 상자를 만들고 있던 비벡 동(Bibek Dhong)에게도 들렸다. 그는 아내와 새로 태어난 딸로 이뤄진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그리고 전화 한 통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0년 동안 메사추세츠에 있는 비영리재단인 Verite와 같은 곳에서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 내 전자제품 공간 외국인 노동자들 처우를 경고해 왔었다. 그렇지만 Foxconn처럼 중국 내에 있는 최종 공정 플랜트의 문제 때문에 그런 우려는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Verite 등은 말레이시아의 상황도 유사함을 알아냈다. 단 차이도 분명히 있었다. 떠나야 할 외국인 노동자 권리를 공장 관리자들이 종종 통제한다는 점이었다.

애플은 이 사실을 2008년, 대만의 부품 업체 감사를 실시하면서 알아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애플의 감사관이 외국인 노동자 여권이 금고 안에 쌓여 있는 광경을 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공장 관리자가 노동자들이 모집인에게 빚을 졌기에 담보로 여권을 받아 놓았다고 말했다. 애플과 협조하는 영국 컨설팅 업체인 Impactt의 간부, 해리슨(Dionne Harrison)에 따르면 애플은 저당 잡힌 여권과 채무, 이자 때문에 수개월, 혹은 수년까지 잡혀 지내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애플이나 다른 기업들은 이들을 계약 노동자이되 신분만 노예가 아닌 담보(bonded) 노동자라 부른다. 애플은 2010년 자사 공급망 보고서에 묘사했듯, "노동자의 고향 마을까지 뻗어 있는" 모집인과 브로커들을 연결 시키는 채무망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이들 담보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업계에 이런 문제는 워낙 널리 퍼져 있기에, 2009년 애플은 월급여 이상 채무를 진 노동자의 고용을 금지 시키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애플 스스로의 관측에서도 드러났듯, 상황은 더 악화됐다. 지난해 애플 감사실은 애플이 이전에 제한한 채무액을 넘어서는 640만 달러를 노동자들이 갚았음을 발견했다. 이전 4개년도는 다 합쳐 봤자 670만 달러였다. 게다가 2011년에 애플이 감사를 실시한 플랜트는 더 적었고, 애플은 자신의 채무 한도 이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리펀딩을 하도록 공급업체들에게 지시했다.

지난해 과도한 수수료를 색출해낸 곳의 플랜트는 쿠알라 룸푸르 남부에 있는 Bukit Raja Flextronics 플랜트였고, 동과 그의 동료들이 일했던 곳이 여기였다. Flextronics는 애플의 최상위 10개 공급 업체 중 한 곳이며, Bloomberg Industries의 추측에 따르면 30개 국가 15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이 여기서 제일 잘 알려진 제품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Lockheed Martin과 Ford Motor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고객사 1천여 곳 이상의 제품도 만들고 있다. 5월 30일, CEO인 맥나마라(Michael McNamara)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손대지 않는 곳은 전자를 불문하고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우린 모든 곳의 공급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카트만두 계곡 끄트머리, 동의 고향 가족의 농가를 폭풍우가 파괴한 후, 동은 아시아 전역에 눈독들이고 있는 전세계 전자 업계의 고용 대상이 되어버렸다. 키카 크고 강단 있는 동은 부인인 살로메(Salome)보다 훨씬 크다. 종종 미소를 띄기 위해 노력할 때면 그의 광대뼈는 더욱 높아졌다. 그는 살로메와 "연애 결혼"을 했으며, 그들의 크리스트교 신앙 때문에 그들은 힌두교와 불교가 지배적인 지역 내에서 소외당했다. 도시로 이주한 수많은 자영농들처럼, 동 부부는 도시 생활이 쉽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살아 있는 일거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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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ong with his wife, Salome

어느 시점엔가 그는 그에게 좋은 해외 일자리를 약속했던 모집인에게 $250을 줬다. 이 모집인은 그를 정부에 소속된 750곳 이상 되는 카트만두의 인력사무소 브로커에게 소개햇고, 동은 브로커와 함께 여권을 들고 떠났다. 2012년 10월 14일, 그는 전화를 받았다. 카트만두에 있는 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500(그의 6개월치 봉급이었다)을 가져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동에게는 그런 현금을 그렇게 빠른 시간에 챙겨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브로커는 동에게 될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가져 오라고만 일렀다. 그리고는 다음 날, 그들은 공항으로 향했다. 동과 그의 부인은 지역 사채업자로부터 $350을 빌렸고, 그는 이 돈을 브로커에게 이게 전부라며 건네 줬다. 브로커는 이 현금을 갖고 또 다른 브로커를 만났다. 그가 바로 공항까지 동을 데려갈 브로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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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면도기가 들어 있는 검정색 배낭에 옷 여벌과 성경 두 권(하나는 네팔어, 다른 하나는 영어), 가족 사진 3장을 챙겼다. 울고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인사하고는 소형 버스에 올라 시끄럽고 먼지 많은 카트만두 길을 떠났다. 약속한대로 세 번째 브로커가 공항에 동의 여권을 들고 있었으며, 그는 돈을 요구했으나 동은 이제 줄 돈이 없었다. 그래서 브로커는 동에게 $400 이상을 내겠다는 채무 증서에 서명하라 말했다. 만약 서명을 안 하고 빠르게 되갚지 않으면 그는 일자리를 잃을 터였다. 그는 아직 일을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1,000 달러의 채무를 지고 말았다.

동은 서명을 하고 여권과 서류 다발을 받았다. 그는 관련된 모든 브로커들로부터 어떠한 수수료도 언질을 못 받았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누구라도 그 사실을 폭로하면 그는 다시 네팔로 곧바로 소환되어 형을 받고 처벌될 테니까요." 그날 오후, 동은 생애 처음으로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는데, Flextronics로 향하는 41명도 같은 비행기였다. 10월 15일, 쿠알라 룸푸르에 그들은 내렸고, Flextronics 대표가 그들을 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그들의 여권을 받은 다음, 버스에 태워 도시 남쪽으로 향했고, 그들 숙소로 빌린 곳으로 향했다. 옆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두 곳의 탑이 있었다.

10월 말까지 카메라 생산이 완전히 이뤄져야 했었다. 동과 동료들은 오전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서 아침 7시 공장에 도착했다. 출근 시간은 혼잡 때문에 한 시간 넘을 수 있었다. 아침마다 플랜트에 도착했을 때, 동은 타이트한 후드를 포함, 머리부터 발까지 가리는 하얀 클린룸 옷을 입었다. 얼굴 대부분은 면-마스크가 가렸다.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동과 동료들은 하얀 타일로 된 천장과 형광등 아래에서 12시간 동안 일했다. 그들의 라인은 뉴멕시코, 로즈아일랜드 등 미국 주 이름이 붙여졌고, 네팔 브로커에 따르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3천 명의 여성 노동자들도 같은 플랜트에서 일했다고 하지만, 네팔 노동자들에 따르면 그들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동과 다른 네팔 동료들 계약은 매일 12시간 노동에 월 $178이었다. 이는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네팔 시민을 위해, 네팔 정부가 의무로 부과한 최저임금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러는 아이폰 5의 카메라가 이전 버전보다 25% 더 작지만, 렌즈를 보다 더 정밀하게 배치하고 "마이크로 수준까지" 엔지니어링 한 덕분에 사진이 더 날카롭다고 말했다. 렌즈를 만드는 곳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동의 임무는 테스트였다. 그는 트레이에 놓인 카메라를 각 머신에 끼워 놓고 배치와 포커스 등을 테스트했다. 각 렌즈를 받아들일지 뺄지를 컴퓨터가 물었고, "오류" 코드가 화면에 나오는 경우에 따라 취소가 이뤄지고 10여 가지 이유로 정리를 했다. 바쁜 날은 거의 4분에 한 대 꼴로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11월, 동과 동료들은 오류율 증가세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달 말에는 생산이 거의 멈춰졌다. 네팔의 브로커가 그들에게 12월 19일, 쿠알라 룸푸르에서 회의가 있다고 소집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Flextronics의 말레이사 인력 사무소로 가서 애플이 카메라 10대 당 7대를 취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아예 생산이 중단됐고, 일이 중단됐는지도 몰랐던 동과 동료들은 기숙사로 되돌려 보내졌고, 그들은 20일 이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10여 명의 경찰과 Flextronics 관리자로 알려진 네팔 브로커가 1월 10일, 기숙사에 나타나 탑 두 개 사이에 있는 마당에 그들을 모이게 했다. 확성기를 통해 그는 그들에게 일자리가 사라졌고 고향으로 가리라 말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정리해고의 이유가 회사의 제조 공정 때문이 아니라 "현 경제 환경" 때문이라 적힌 서한도 하나씩 나눠줬다. Sharp의 슈레스타에 따르면 3천 명의 여자들도 모두 해고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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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서한은 그들이 1월 나머지 잔여 월급에 한 달 봉급을 더 받으리라 적혀 있었다. 그러면 명당 $600이었다. Flextronics는 이 금액이 말레이시아 법 요구액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동과 동료들은 문 닫기 전에도 그러했듯 급료 대부분을 집으로 송금했었다. 그러나 그날 동은 가족들에게 두 달치 생활비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가족들은 동이 잃어버린 일자리를 위해 졌던 채무를 갚기 위해 감히 소중한 돈을 쓸 수조차 없었다.

확성기를 든 사내는 노동자들에게 집으로 곧장 보내주겠노라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리자들이 1,300명 이상 되는 동과 동료들 여권을 갖고 있었으며, 아직 숙소를 떠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 후 송환 비행편이 멈춰졌다. 물론 노동자들은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다.

불확실한 나날이 계속 이어졌고, Flextronics가 허용한 비자도 만료 기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법적 지위도 불안정해졌다. 즉, 숙소를 떠나면 불법체류자로 잡힐 수 있었고 처우도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동은 이제 불법체류자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합법적인 이민자들도차 잘못 다루기로 악명 높다. 미국 국무부의 인권연감 보고서의 말레이시아 편을 보면, 말레이시아는 불법구금과 고문, 강간 혐의로 점철돼 있는 나라다. 감히 바깥으로 나간 Flextronics 모집인들 중에서도 경찰이 그들에게 현금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새 일자리나 고향 비행편에 대한 소식을 기대하며 나날을 보냈다. 어떨 때에는 축구를 하면서, 불법복제된 발리우드 고전 DVD를 끊임 없이 보기도 하고, 작은 방에 있는 텔레비전 스피커는 늘상 울려댔었다. 대부분 말레이시아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역 텔레비전도 항상 켜져 있었다. 동은 미국 프로레슬링이라는 만국어 쇼를 발견해냈다. "저는 존 시나(John Cena)의 팬입니다."

다음 달 월급을 기대하며 대부분의 돈을 송금해버렸기에, 이제 현금이 없어져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음식도 거의 없어져갔다. 장부에 따라 숙소 외부 동네 식당에 의존했던 더 젊은 그룹이 먼저 배고파졌고, 일자리가 없어짐을 안 식당주들은 그들에게 음식 제공을 중단했다고 한다. 곧 모두가 배고파졌다. 동은 저녁만 되면 동료들이 높이 솟아 있는 타워에 대고 질러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동료는 머리가 이상해져서 운동장을 거닐며 스스로 중얼거리고 고함 지르기도 했다. 동은 세 명의 다른 동료들과 공유한 작은 방에 기거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는 영어와 네팔어 성경을 나란히 놓고 읽으며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1월 하순, 남은 음식은 이제 쌀떡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같은 방의 다른 동료들과 공유했었다. "갖고 있는 것을 다 꺼내서 같이 먹었습니다."

2월 초, 희망은 사라졌다. 모두들 돈과 음식이 떨어졌다. 27세인 카플레(Hikmat Prasad Kafle)의 말이다. "무서웠습니다. 여기서 죽으면 다같이 죽으리라고 말이죠." 음식이 여러 날 동안 없거나, 구휼에 의존하여 생존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있었다. 네팔에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살았던 농부였던 30세의 파라줄리(Ramesh Kumar Parajuli)의 말이다. "그들은 우리를 개처럼 대했어요. 굶어도 자기 나라에서 굶는 편이 좋습니다." 동은 휴대폰 잔금을 아끼기 위해 부인과 통화도 점점 덜 했다.

첫 번째 주 금요일, 공포와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창문을 치는 이들이 있었고 텔레비전을 6-7층 위에서 집어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왔을 때, 경찰들은 체포가 아니라 회사에게 음식을 보내라 명령했었다. 숙소 관리자인 말레이시아인 라가나투(Raganathu Rao Appalanaidu)는 경찰과 협상하여 네팔 노동자들을 체포하지 않기로 확인 받았다. "하지만 협상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송환 절차를 빠르게 진행했죠."

Flextronics는 충분하지 못 했으며 종종 못 먹을 수준으로 왔다고 하지만, 미리 만들어진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비행편도 조정됐다. 동은 마지막으로 떠났다.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은 공항에 가서야 여권을 되돌려 받았다. 2월 21일 단 하루에 출국하기 위한 "특별 허가증(special pass)"이 있었다. 그날 그는 고향으로 갔고, 마지막으로 일한지 두 달 이상 넘었었다.

네팔로 돌아온 많은 노동자들은 모집인과 브로커들에게 아직도 돈을 빚진 상태이다. 심지어 빚을 청산하기 위해 불안정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 31세의 농부이며, 동과 같은 항공편으로 말레이시아에 갔었던 푸델(Krishna Prasad Poudel)은 원금/이자를 갚기 위해 땅을 상당수 팔았다고 말한다. 그러고나니 이제 생계수단이 막막해졌다. 일자리 때문에 땅을 저당 잡히거나 그렇게 될 사람이 적어도 네 명이 더 있었다.

동은 카트만두의 신발 공장 일자리를 얻었고, 근접한 인도에서 팔리는 $5 짜리 스니커즈를 만들고 있다. 그는 12시간 동안 출하하기 전의 신발에 접착제를 바르는 일을 하고 있으며, 하루 일당이 $3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약속 받았던 최저임금의 절반 가량이다. 한 달에 그는 $90 이하를 벌고 있으며, 매년 이자로 $300을 빚지고 있다. 즉, 가족 연간 소득의 1/3이 더이상 갖고 있지 않은 일자리 이자 비용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본지에게 이메일로 한 답변에서 Flextronics는 동과 다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불했던 수수료를 면밀히 감사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와 네팔로 외부인사들을 보냈다고 했다. 대변인인 브라더톤(Renee Brotherton)의 말이다. "이전 관행처럼, 우리는 인력 사무소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담한 고용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변제할 것입니다." 게이더(Chris Gaither) 애플 대변인은 "Flextronics 측이 감사를 끝내면, 올바른 지불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한 달 급료가 얼마가 돼야 하느냐에 대한 애플 표준 측정치는 3년 계약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사에 나오는 네팔 노동자들은 겨우 수개월 일했으며, 모두들 빚이 생겼고, 특히나 동의 경우는 말레이시아에서 번 모든 봉급의 절반이 빚이었다. 네팔에서 Flextronics에서 일했던 사람을 40명 넘게 인터뷰했는데, 그중 거의 모두가 애플의 공급망 안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졌었다.

동과 그의 부인의 탈출구는 하나 뿐이다. 돈을 더 많이 빌려서 한 번 더 해외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전직 Flextronics 노동자들 다수는 또 하겠다고 말했다. 동의 말이다. "무섭습니다. 이미 빚이 있지만 지금은 나가기 위해 더 빌려야 해요. 지금도 이미 많은 이자를 내고 있으니, 이름 있는 모집인을 찾아서 요구사항과 근로 조건을 더 잘 확인해야겠어요. 그 다음에는 나가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안 속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죠."

애플은 지난해 수요에 맞춰서 아이폰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 하는 바람에 수 십억 달러 어치의 시가를 잃었다. 지난 해 말 애플 주가는 최고조에 올랐을 때보다 20% 감소했으며, 공급량 부족도 감소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공급 부족은 애플 간부진에게 공급 속도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고, 쿡은 현재 공격적인 생산-출하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11월 1일부터 출하를 시작한 아이패드 에어처럼 말이다.

게이더 애플 대변인의 말이다. "애플은 외노자 남용 폭로 및 방지에 있어서 업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고용 수수료를 매긴 고용자들에게 변제를 의무로 한 최초의 전자제품 기업이 애플이며, 애플은 2008년 이래 계약 노동자들에게 1,640만 달러의 도움을 줬습니다. 우리는 애플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담보 노동자들 주장을 의욕적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우리 팀은 지속적으로 공급망을 더 깊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애플은 비윤리적인 관행을 근절하는 방법으로서, 인력 브로커들을 통해 고용한 노동자들을 공급업체들이 직접 인터뷰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으로 행동수칙을 수정했습니다. 비록 Flextronics의 Bukit Raja 시설은 더 이상 애플의 공급망이 아니지만, 우리는 해당 혐의에 대해 극도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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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lextronics factory in Shah Alam, Selangor state, Malaysia

Flextronics의 브라더톤 대변인은 말레이시아 1,500명 노동자들의 운명에 대한 세부 사항 논의를 거절했고, 다음과 같은 말을 추가했다. "비밀 보장 동의서 때문에, 우리의 특정 고객에 대한 질문을 Flextronics가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또한 Flextronics가 과도한 수수료와 부적절한 노동자 대우를 우려하고 있으며, 회사가 직원 모두의 웰빙을 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해당 혐의를 면밀히 조사하여 불법행위를 즉각 색출하여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시정조치를 회사 차원에서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지난해 실러가 아이폰 5를 보여주고 있을 때, 네팔에서는 고용이 정신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쿡은 무대를 거의 차지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발언은 쿡이 했었다. "전세계에 걸친 우리 직원들의 헌신과 창조력 덕분에 애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합니다. 직원들이야말로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들 삶을 진정 바꿔놓을 혁명적인 제품을 전달해주기 때문이죠."

With Adam Satariano
Simpson is a reporter for Bloomberg News in London.

An iPhone Tester Caught in Apple's Supply Chain - Businessweek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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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CoooolGuy님의 댓글

귀한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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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信行による世界先行レビュー: Apple Watchが腕時計とウェアラブルの概念を変える 4월 10일 금요일부터 예약개시에 맞춰 드디어 애플워치 전시가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애플스토어 긴자와 오모테산도, 그리고 신주쿠…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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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여인들

Les femmes qui ont faconne Apple Sylvain Trinel | 8 mars 2015 | 15:12 애플, 남자들의 역사일까 애플 역사가 가리키는 주요 인물들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스티브 잡스나 스티브 워즈니악, 미하엘…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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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을 다르게 이끄는 팀 쿡

애플을 다르게 이끄는 팀 쿡 LEADERSHIP WORLD'S GREATEST LEADERS Apple's Tim Cook leads different by Adam Lashinsky @adamlashinsky MARCH 26, 2015,…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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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이패드를 얼마나 잘못 생각했었는가

우리가 아이패드를 얼마나 잘못 생각했었는가 How We Underestimated the iPad 27,2537 Adam Clark Estes 4/03/15 4:50pm 오늘로서 아이패드가 다섯 살이다.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이 기…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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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논쟁

스티브 잡스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논쟁 The War Over Who Steve Jobs Was Walter Isaacson’s official biography of Apple’s genius leader is being challenged …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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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를 다룬 책, "Becoming Steve Jobs"

The New York Times MEDIA Apple Opens Up to Praise New Book on Steve Jobs, and Criticize an Old One By BRIAN X. CHEN and ALEXANDRA ALTERMA…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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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속임수 기술

애플의 속임수 기술 The art of deception: How Apple attempts to keep its secret projects under wraps By Neil Hughes Saturday, March 14,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