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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메리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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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추석!

A.M. 7:00

숲은 한 호흡의 인기척도 없이 깨어나 있다. 가로등은 무기력하게 햇살에 녹아내리고 하늘은 짙은 회색. 수채화처럼 함부로 번진 무성의한 블루로, 시골처녀의 눈화장처럼 치장했다.

발 아래 사위어 드는 풀섶에서 뀌뚜라미 울음소리가 채인다. 멀리서 나를 반기는 개 짖는 소리, 이윽고 새들이 지저귄다.

사료를 풀어 개들에게 한 바가지씩 준다. 개꼬리는 모터처럼 돌아가며 기쁨을 나타낸다. 나는 그 순수한 환희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 머리를 쓸어준다. 그만한 기쁨에 그만한 환희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아마 내가 영리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아니라면 좀 더 절망적이지 못한 탓일게고...

말들이 고개를 내밀고 힝힝 거린다.  수레에 티모시를 가득 담고 어제 갈아준 톱밥의 향이 그윽한 마방을 지난다. 성급한 놈들은 머리를 내밀고 수레에 코를 들이댄다. 축복어린 건초를 한 덩이씩 지급받은 말들은 곧바로 침묵한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의 생명은 보장 되었다. 

차가운 물줄기로 그들의 혈관을 채운다. 잠깐 눈을 굴려 나를 바라볼 뿐, 말들은 감사할줄 모른다. 아니 힘들게 사람을 태워준 그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피차 일반이겠지. 말과 사람에겐 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인가? 나는 머리를 젓는다. 생각이 너무 폭주하지 않게 잘라 버린다.

A.M. 7:30

밤과 낮이 어눌한 혼란으로 섞인 아침. 나는 벌레들의 오케스트라 속에 홀로 놓여있다.


"형님 잘 지내세요?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한번 들를게요."

"내년 3월 쯤에 결혼하려구요. 네. 아니요. 작년가을에 만났어요."

"형! 나 좋은 소식있어요. 네. 상 받았구요, 이번에 등단도 했어요."

"대장님 오랜만입니다. 저 여자친구랑 있어요. 네 찾아뵐게요."

술잔을 앞에 두고 있을 때 걸려오는 전화는 내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은 모두 다행한 것들이다. 흠 느긋하게 잘 살아가고들 있구나.


"네. 말 때문에 못내려가요. 네. 네. 힘든 건 없어요. 네. 걱정 마세요. 잘 챙겨 먹고 있어요. 네. 잘 지내세요."

갑작스런 진동으로 돌아다니는 전화기를 어지럽게 널린 소주병 사이에서 집어들자,  수화기 속엔 억제된 염려와, 과밀한 감정들이 끈적하게 흘러 나온다. 그리고 탯줄이 잘리우듯 300Hz의 음성신호는 과거가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며칠 동안의 고독이 결정 된 것이다. 나는 잠들었고, 밤은 묵묵히 제길을 걸어 무채색의 아침이 되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담는다. 커피향이 폭발이라도 하듯 공간을 촘촘히 메운다. 날씨가 차가워 질수록 수증기는 점점 더 뚜렷해진다. 사람이 그리운 시기가 되면, 고독은 더욱 선연해진다. 때로 심장에서 방금 뽑아낸 칼날 위를 흐르는 선지의 빛으로 번득인다. 그래서 '가슴을 도려내는.' 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일까? 진공의 공간에 잠시, 커피잔을 든 정물 1이 된다.

지나친 고독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Aldimeola의 기타 연주를 걸고, 낄낄 거리며 정담을 나누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쫑긋거린다. 시간을 멈추고 현실도 잊는다. 세상은? 상관없다.

A.M. 8:00

한 모금 정도 남은 식은 커피을 단숨에 마시고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메리 추석! 고독의 담장 밖에 있는 자들이여. 변비걸린 길에서 선잠을 자거나 말거나, 고스톱을 치다가 싸움이 붙거나 말거나, 오늘 그대들의 일상은 어떤 이들의 꿈일세. 그러니 안심하고 마음껏 즐기라고. 달이 새파랗게 떠오르면 좋겠네. 내가 그 밤엔 우리 개들과 함께 세레나데를 불러 주지. 멋지잖아? "
 
바람이 목언저리를 차갑게 파고든다. 묵직한 겨울의 냄새를 품은 바람이다. 진공의 숲엔 한 사내가 천천히 수레를 밀며 검은 말들의 실루엣 사이로 스며든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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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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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에리카님의 댓글

추석...
소식....
괴리....

김명기님의 댓글

일부러 너는 고독한거야. 라고 일깨워주는 듯한...

nycgov님의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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