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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평균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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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치 인간.

안개가 말끔히 걷힌 숲에서 towa tei의 빠른 곡들을 듣고 있다. 어제까지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 흐르던 공간에 조금은 어색한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뭇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낙엽들은 나름대로 몸을 흔들며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오전은 늘 내게 행복한 시간이다. 말 밥을 주고 마분을 치운 뒤, 우물 속 같은 숲 속에서 완전한 진공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다. 쌀쌀한 바람이 마른 살갗을 스치고, 졸리운 듯한 연한 햇살이 낙엽송과 잣나무 가지 사이로 부챗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시베리안 허스키 장군이는 어깨에 따듯한 빛을 받으며 길게 늘어져 가끔 귀를 팔랑거리며 잠을 보충한다. 말들은 킁킁 거리며 먹다 남은 건초를 찾아 입에 물고 우물거린다. 까투리 한마리가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볼에 새빨간 벼슬이 아름답다. 장끼는 어디있을까?

분명히 꿩을 좆아 아프리카의 스프링 복스처럼 전력질주를 해야 할, 코커스패니엘 콜라는 세탁기 그늘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다. 발 앞에 사료가 남아 있는 것을보니 포만감에 젖어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음에 분명하다.

머리 위로 군용기 한대가 지나간다. 터보프롭엔진의 육중한 울림이 숲을 채우자, 콜라가 깨어 조그맣게 멀어져 가는 수송기를 보고 짖어댄다. 장군이는 누운채로 머리를 조금 들어 하늘을 보고 그대로 툭! 고개를 떨어뜨린다. 까투리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적막.

가끔씩 창 밖을 보면 그림자만 손톱만큼씩 움직이고 있는 오전. 가을은 본래의 모습으로 숲을 서성인다.

이윽고 나는 정적 속에 갇혀 주변의 일들을 돌아본다. 이 과정은 마분을 치우는 것과 비슷하다. 마분과 깨끗한 톱밥을 구분하고, 마분을 모으고, 수레에 담고, 한 곳에 모은 뒤, 비닐봉지에 담아, 쌓아두는 것이다. 힘든 과정이지만 정리하고 난 뒤의 개운함도 동일하다.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로 부서진다. 누구나 늘 문제에 좌초되곤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모두 다르다. 문제가 뭔가를 살피고, 문제를 멀리서 요모조모 살펴보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만약 문제에 대하여 분노한다면, 절대로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리고 문제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격한 반응을 보고,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된 낯선 자아에 대하여 경악하고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우울해 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은 심각하다.

전에 어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평균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을 미워할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그 사람 전부를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간의 경과. 그러니까 그 사람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을 돌아보고, 평균값을 마음 속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니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괴물에게 놀라거나 정복 당하면 안된다. 자신이 평생동안 지켜온 행동의 수준계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다가.' 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사소한 일로 부서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괴롭다. 그(그녀)가 지닌 빛나는 품위가 자신에 대한 회의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도 몹시 괴롭다. 그러니 늘 돌아보라. '자신이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내부의 목소리에 주목해야한다.

운동장에서 날아온 축구공처럼 갑자기 다가오는 문제들은, 우리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자신의 평균치와 비교하여, 늦기전에 평온하고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엽송 가지 끝에 참새가 앉아 있다. 나도 콜라도 장군이도 참새를 바라본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시간에 멈추어 있다. 백만년 동안 빙하에 갇힌 매머드처럼, 이작은 숲의 세계는 언제까지고 그대로 멈추어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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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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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여백님의 댓글

찬바람이 쓸쓸하게 옷깃을 스치면...
(중간생략) 아~~아~~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엘비스프레슬리곡을 번안한...
-,.-"

듣다보면 왠쥐~~ 가을의 상념...
새벽녁 맨발로 낙엽들을 밟으며 숲속을 헤메는 느낌과 비슷한..
-,.-"

뭐라 말할 수 없는 멜랑꼬리...

김명기님의 댓글

하핫. 가을엔 진짜 가을만이 지니는 분위기의 노래들이 있지요? 아아 숲 속에서의 가을노래. 정말 좋습니다.

에리카님의 댓글

가을의 찬 바람은
가슴을 두드리고
곧 매서운 겨울이 올 것임을 암시하지요..
그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4계절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행동의 변화가 있을것이고 감정의 변화가 있을것이고
또한 수없이 많은 인간군상중에서 공통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평균치도
산출되어질 것이고...
항상 무언가에 대입하며 비교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지요..
어차피 살아간다는것은
괴리 아닐까 싶네요...

김명기님의 댓글

공기와 물만큼이나 소중하고, 우리의 삶에 나이테를 새기는 존재... 계절은 그런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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