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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짐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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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신문

어쩌다 라면이라도 먹으려 분식집에 가면, 늘 혼자인 데다가 사람들이 2미터 이내로 잘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신문을 집어 들고 코를 들이박게 된다. (수염은 듬성듬성, 낡은 가죽 카우보이모자, 더러운 신발에서는 말똥 냄새 풍풍!) 어쨌건 깊은 산 속에 박혀 있는 사람에게 신문은 일시적으로 '신기한 물건'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제 신문 속에 사람들은 실종되었다. 이런 저런 기사들은 도무지 사람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신문에는 인간의 세상이 아닌 짐승의 세상이 묘사되고 있었고, 지금까지 묘사되었던 어떤 지옥보다도 더한 지옥이 현실 속에 펼쳐져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고, 남편은 사창가에서 밤을 새고, 전 세계의 처녀들은 벌거벗고 쉬운 돈벌이에 나서고, 수많은 어린이들은 굶어 죽기 직전의 박제가 되어간다. 정치가와 관리들은 돈을 받아먹느라 여념이 없고, 살인마들은 죽인 시체를 불태우고 가끔 시식을 즐기기도 한다.

먼 나라에서는 수 천, 수만 명이 네이팜탄에 불쏘시개가 되어가고, 내가 선 이 땅엔 한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파멸적인 핵이 어른들의 장난감이 되어 난폭한 군대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의혹이 깊어만 간다. 나는 눈을 감고 신문을 덮는다.

단테는 상상 속의 지옥을 들어서며 “모든 희망을 버릴 지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지옥은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코카콜라의 C.F. 다음으로, 몸통이 반쯤 절단 나거나 목이 잘린 시체를 저녁 식사를 즐기며 태연하게 바라본다.

"흐음... 이럴 수가, 세상이 어찌 되려고..."

하고 당신은 개탄하며 혀를 끌끌 차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어쩌면 내일은 이 것보다 더 자극적이고 더 악마적이고 파멸적인 소식이 없을까, 신문 구석구석을 샅샅이 아이스크림처럼 핥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왜 그 어려운 시험을 보아 선택된 기자들이, 오늘 당신이 일용할 더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지겨운 소식을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을까? 이제 기자들은 당신이 요구하는 기사를 찾아, 당신이 소화하여 삼키기 좋게 요리한다. 신문은 더 많은 엽기와 피를 찾아 헤맨다. 그 피비린내 나는 소식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결국 당신의 저녁 식탁인 것이다.

당신을 놀라게 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어떤 처녀가 백 토막이 나서 불에 태워졌다면 당신은 놀라겠는가? 베컴이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식과 어떤 무명인의 무참한 죽음과 어느 쪽이 당신에게 더 '쇼킹'한 뉴스겠는가? 당신의 감정엔 이미 검버섯이 필 정도로 두터운 딱지 앉아 버렸다.

어떤 어린이가 굶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면, 그 다음엔 후원의 손길이 실리고, 그것을 끝이다. 어쩌면 그 어린이는 ‘높은 분들의 빈틈없는 복지 정책에 틈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는 명목으로 보호시설에 끌려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일들은 시스템화 되어 간다. 만약 신에게도 시스템이 있다면 우리의 다음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소돔과 고모라는 불평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는 불평자체가 사치고 과욕일 것이다.

장구한 역사 속에 순차적으로 일어났던 수많은 비극이 요즘은 매일 일어나고 있다. 더 두려운 것은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은 시인들의 허구에서만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서울 역 앞에서 신을 헐값에 매도하는 샌드위치맨이 아닌,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신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 신을 별로 신용하지 않지만, 이제 종말이 곧 다가 올 것만 같다. 신문만 열면 지옥도가 펼쳐지는 세상에 무슨 쓸만한 희망이 숨겨져 있단 말인가?

어쩌면 오늘 신문 속의 일단짜리 사건으로 뜻하지 않게 죽어 버린 개인에게는, 이미 종말이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일 자 신문 속에 우리의 이름이, 혹은 우리가 아는 이름이 발견되지 않기만을 고대해 본다.

그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점점 두려워만 진다. 이 창궐하는 짐승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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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8

여백님의 댓글

-,.-"

세월 먹으며 무감각해져버린 내 머리에 경종을 울리는...글

요즘에 와서야 나를 되돌아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찍어보는데...

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야 정말로 옮바른 삶일까...

고민고민...
-,.-"

adam님의 댓글

언제부터인가 신문에 난 기사보다는 만화만을 애써 찾아봅니다. 만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 때론 슬프고 또 묘한 상상력으로 자극을 주기도 하고 머리아픈, 우울한, 그리 놀랍지 않은 그런저런 뉴스보다는...

김명기님의 댓글

이젠 범죄가 너무 당연시 되어 버린 세상이라서 누구나 무감각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김명기님의 댓글

빨간 자전거 같은 만화도 이젠 드물지. 전부 도박과 폭력과 범죄를 교사하는 듯한 만화 일색이잖아...

黑虎님의 댓글

세상은 이미 파괴되어버린지 오래....
약육강식....
무의미한 폭주....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것은 주먹...
그래도...
그 속에 사랑은 있음으로
반전을 꿈꿔봅니다...

똥똥이님의 댓글

넘 서글퍼지네요 살기 싫을정도로..
하지만 전 제 주위의 사람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
저만의 착각이 아니길...
지금 저 세상과 다른 세상이길...
넘 이기적인가요 사실 다른 세상 얘기같습니다.
그래서 더 슬퍼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어떻게 하면 잘사는것인지 생각 않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세상속에서 열심히 제일을 하면서
작은 기쁨과 행복으로 살아갈까합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판안은 오로지 주관식입니다. 아니라고 믿는다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그래도 희망! 을 지니고 살자구요... ^~^

김명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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