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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남아 있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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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학년이 등교를 시작한 28일 아침의 학교 앞 풍경을 전하는 보도에 의하면,

학교와 학부모 및 교육당국의 거듭된 취재 자제 요청과 함께,

이 문제(언론의 취재 행태)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걱정과 비판이

몹시 고양되어 있는 사정을 의식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언론사의 취재 활동이 상당히 위축된 상태에서 학생들이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접하면서 유독 제 눈길을 잡아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3학년은 지난 24일부터 등교하기 시작했고 1학년은 28일부터 등교하게 되었는데

이번 수학여행에서 재난을 당한 2학년에 속한 학생 중 일부가

1학년과 함께 이날부터 등교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열세 명, 이번에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않은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수학여행에 참가한 학생이 325명이라 듣던 순간부터 혼자 늘 궁금해 했던,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않고 학교에 남은 사람의 숫자가 열세 명이란 사실을 이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 옛날 제 초중고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들 열세 명이야말로 학창 시절에 제가 늘 속해 있던 그룹이었습니다.



전설처럼 손꼽아 기다린 끝에 6학년이 되면 마침내 가게 되는 국민학교 수학여행에 빠진 걸 시작으로

중학교 2학년 때, 행선지가 경주였던 2박3일의 수학여행도 가보지 못했고

계속해서 고교 2학년 봄에 제주도로 갔던 3박4일의 수학여행에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대학 시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학생 시절을 통틀어 수학여행을 가본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수학여행 기간 중에 거기에 참가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학생들의 생활이란 것이,

그거 정말... 좀처럼 겪어보기 힘든, 뭐라 말할 수 없는 울적함과 따분함으로 점철되는,

하여튼 꽤나 희귀하면서도 웬만해선 마주치고 싶지 않은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초중등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2학년 봄의 수학여행에서 제외되어 학교에 남은 동기들의 숫자가

열셋 혹은 열 여섯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습니다.

계산해보면 60명이 넘었던 한 반에 한 명 혹은 두 명 꼴이었습니다.

620명 중에서 열 셋 혹은 열 여섯이었다지만 공교롭게도 평소 알고 지내던 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이 워낙 없다보니 선생과 동료들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함께 할 수 없었던 사정이 대다수였겠지만

경제 사정에 관계없이 나름의 소신 때문에 불참을 결정한 놈도 드물지만 있었을 겁니다.

이를테면 저 같은 놈을 말하는 거지요.



집안 형편이 직접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서도 가지 말라고 하신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수학여행에 참가하길 바라셨고 제 태도만 정해진다면 틀림없이 여행 경비를 마련해주셨겠지만

제가 처음부터 워낙 확고한 태도로 불참을 고집했기 때문에 더이상 설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긴... 중딩 시절은 물론이고 초딩 시절에도 꺾지 못한 고집인데

하물며 꽤나 굵어져버린 대가리를 어깨에 얹고 다니던 고삐리였음에야 새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수학여행 기간에는 등교하지 않고 방학처럼 집에서 내내 쉬거나

아니면 '민방위훈련'이나 예비군의 '비상소집훈련'처럼 이른 아침에 출석만 부르고 집에 가라고 했으면 좋으련만

망할 놈들이 종일토록 학교의 한 교실에 몰아놓고 쓸데없는 자습을 강요하거나

불요불급한 교내 사역에 동원되어 삽자루와 함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다반사이다보니

누구 할 것 없이 꽤나 견디기 힘든 생활이었음에도,

비록 지금은 힘들고 따분하다지만 며칠만 견디다보면 곧 해일처럼 들이닥칠 친구들이

한아름 안겨줄 이런 저런 이야기 보따리와 갖가지 선물에 생각이 미치다보면,

그나마 한결 포근해지는 마음이 들고 또 그러면서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남아 있는 열세 명에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참가하지 않아서 덕분에 무사했다지만

입학한 이래 일 년이 넘도록 서로 의지했고 함께 생활했으며

꿈에서도 늘 얼굴을 맞대었을 거의 모든 사람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흔 몇 명과

학교에 남아 있던 열 셋의 청신한 영혼들의 앞날을 간절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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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2 2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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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3

ssenja님의 댓글

모처럼 공기 맑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잠시 후에 동대문에서 출발해서 성곽길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가 낙산공원을 거쳐 삼선교까지 가볼 겁니다. 
거기서 큰 길을 건너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성북동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면서 삼청터널 입구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율향천님의 댓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걸로 봅니까?

ssenja님의 댓글

그거야 모르지요.
한데, 지도에서 가늠해본 것과는 달리,
실제로 걸어보면 애초의 생각처럼 많이 걸리진 않더라구요~

율향천님의 댓글

점심은 성북동에서 해결하는 거요?
거기 밥집들은 무지 비싸던데...

ssenja님의 댓글

국수 한 그릇에 8,9천 원씩 받아먹으니 비싸다고 볼 수 있지요~ ㅋ
그게 억울하면 명륜동이나 대학로 쪽으로 내려와서 식사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율향천님의 댓글

대학로가 그게... 그 동네 밥집들도 영~ 시원찮던데...
그 문제는 걸으면서 결론을 얻어보기로 하고 일단 출발합시다~

ssenja님의 댓글

율향천님의 댓글

밤 11시입니다.
낮에 다녀왔던 서울 성곽길(동대문-성북동 서울과학고 앞)이 예상보다 훨씬 좋더군요.
성곽의 동쪽 길을 따라 북으로 계속 걸어 올라가다가
낙산공원 근처의 가장 높은 지점에 도착해서 동북쪽으로 바라본 서울의 경관이 특히 더 그랬습니다.
북북서 방향에 자리한 북한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웠는데
동남에서 바라본 산의 윤곽이 가려진 부분이 전혀 없이 완전하게 드러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따라 도심의 공기도 무척 맑더군요. ㅋ

ssenja님의 댓글

4월 마지막 날도 벌써 오후 다섯 시를 넘겼습니다.
이곳 유부방은 변함없이 조용하네요~
인적이 전혀 없습니다

율향천님의 댓글

참으로 일관성 있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오늘 낮엔 날씨도 정말 좋았는데 오후 들어 흐려집니다.

ssenja님의 댓글

매우 일관성 있게 조용한 곳입니다.

ssenja님의 댓글

어?
가만 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사월 초하루가 아니네요?

율향천님의 댓글

초하루는 어제였지요.
오늘은 초이튿날이고.

ssenja님의 댓글

삼월이 스무 아흐레까지만 있었나보네요? ㅋ

그건 그렇고...
옛날에, 당신 학생 시절에,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늘 빠졌다고 했잖습니까.
위 본문에도 있듯이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많이 사다 준다고도 했는데 혹시 그때 받았던 선물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는지...
뭐... 아주 약간, 매우 희소한 정도로 궁금하네요~

율향천님의 댓글

별 거 없었시요~
'70년대 중반・후반의 중학생・고등학생들이 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그저 뭐 아주 소소한 물건들이었는데 그냥 뭐... 그 마음이 고맙고 기꺼울 뿐이었지요.

ssenja님의 댓글

에? 소라 껍데기?
그 거, 뭐에 쓴다고....

율향천님의 댓글

뭐에 쓰다니, 이 사람아!

당신이 옛날 우리 동네의 특수한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
다른 지방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들은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문제이기도 할 텐데,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적어도 1980년도 이전에,
충청북도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 중에는
평생토록 바다 구경을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는 거 아니겠소. 
아마도 당신이 이런 사정을 잘 몰라서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는 거요.

하여튼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에는 학교를 불문하고
그 지방의 초등학교들의 수학여행 일정에는 반드시 바닷가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거 아니겠소!
예를 들어, 부산 해운대라든가, 포항, 강릉, 뭐 그런 곳 말입니다.

당시에 수학여행을 앞둔 내 친구들이 드디어 바다 구경을 한다며
한껏 설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따라서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는 소라 껍데기 선물에 나름 특수한 사정이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나도 저 선물을 아주 기쁘게 받았고 그 뒤로 십여 년 이상 내 방에 걸려 있었습니다.
수시로 귀에 대고 바닷가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으하하~

ssenja님의 댓글

귀에 대보고 바닷가 소리를 들었다고요! ㅋ

대체 당신이 처음 바다 구경을 해본 게 언제요?
솔직하게 밝혀봅시다~

율향천님의 댓글

그거 뭐... 솔직하지 못할 게 뭐 있다고.

그러니까... 에...
내가 군에 있을 때 장단반도 근처에서 훈련이 있었는데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본 게 사실상 처음이라 말할 수 있지요.

율향천님의 댓글

그렇게 따진다면 아무래도... 지금까지도 '정식으로' 바다 구경을 해보진 못했다고 볼 수 있지.
아마도... 내 나이에 나 같은 사람이 흔하진 않을 겁니다. 음하하~

ssenja님의 댓글

그런 종류의 자부심은 당신의 당연한 권리요! ㅋ

그만 떠들고 저녁이나 먹으러 갑시다~

율향천님의 댓글

'수학여행 선물' 하니까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긴 하네요~

국민학생 시절에 수학여행을 다녀 온 친구들이 안겨 준 선물 중에는
바닷가에 가봤음을 증명하는 물건(예를 들면, 소라 껍질로 만든 기념품이라든가)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밖에도 담임선생이 주도해서 반 차원에서 여행에 빠진 급우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도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ㅋ

혹시... 그림엽서였던가?

ssenja님의 댓글

어허!
그 곳이 어찌 바다라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또 서해에서 멀지 않다보니
밀물 때면 바다처럼 넓어보이긴 하겠지만...  그곳이 바다는 아니라고 보는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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