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https’ 차단과 군사정권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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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04. 오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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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국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 검색엔진 ‘빙’(Bing) 접속을 차단했다. 외신들은 중국 주요 통신회사인 차이나 유니콤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빙’을 차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간 중국정부는 인터넷 주권 확보를 명분으로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구축해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자 중국에서 ‘빙’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빙’은 안열리고 바이두는 쓰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들끓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현상이다. 바로 2019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2일 정부는 ‘해외 불법 정보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SNI필드 차단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SNI필드 차단 방식은 ‘https’의 암호화되지 않은 구간에서 목적지가 되는 사이트를 파악하고 해당 사이트가 차단 목록에 있다면 접속하지 못하게 막는 방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접속을 차단하는 사실상 ‘검열’이다. 정부는 https 차단 도입의 명분으로 ‘불법 유해정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기습 발표로 여론은 혼란에 빠졌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A씨는 “내가 이용하는 하는 사이트를 정부가 입맛에 맞게 차단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과거 군사정권시절 불온서적을 등록한 것과 무엇이 다르고 현정부의 사고 방식이 중국정부와 무엇이 다르냐”며 분노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정부의 차단 정책 발표 이후 서울시내 곳곳에서는 정부의 https 차단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도 25만명을 넘어섰다. 급기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영상을 통해 “국민이 공감하도록 소통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여러가지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정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접속 차단의 대상이 되는 해외 불법사이트에 대해 정부가 임의적으로 개입해 결정하지 않는다”며 “(차단 대상은) 독립기구인 방심위가 심의를 통해 결정하며 방심위가 심의·의결한 해외 불법사이트는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가 이용자의 접속을 차단하는 것으로 정부 개입이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시민은 ‘폭탄돌리기’라며 비아냥댔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가 밝힌 차단 방식이 문제라는 점이다. 정부가 낙인찍은 사이트에는 접근하지 말라는 방식은 얼마든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불법사이트 차단을 목적으로 더 많은 개인정보에 접근할 여지가 있다”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https 차단의 주체가 아니며 억울하다”는 정부의 말은 납득할 수 없다.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2호(2019년 3월5일~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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