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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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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괴로운 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우가 찾아와 함께 시간을 나누어 준 것이다.

함께 소주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이야기 한다. 젊은 그는 여러가지 빠른 일에 얽혀 살아간다. 듣다보니 제법 즐겁게 살고 있다. 나이든 나는 그저 듣고 있다. 상대적으로 느린 삶이다. 고개도 끄덕이고 그가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러다 취했다.

"흥! 어쩌다 보니 오징어 회를 많이도 먹었군."

어쩌고 중얼 거리며 휘청휘청 달 아래를 걸어 서식지의 숲으로 들어왔다. 어지러운 가운데 마음을 정하고 남은 문제들을 생각한다. 어찌보면 문제도 아닌 것들이다.

'겨우 이 정도 였나?'

나는 의외로 가벼운 마음에 스스로 놀란다.

다시 시작이다. 그릇으로 물을 퍼내면 그 빈자리에 다시 물이 밀려들 듯이, 모든 끝에는 전제조건으로 '다시 시작'이 있다. 나는 늘 그 '다시 시작'의 마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낡은 자유를 얻은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어쨌건 별이 무척이나 밝은 밤이었다.

잠결에 꿩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코커스파니엘 종인 콜라가 뛰어가며 짖는다. 콜라는 결코 뀡을 잡지 못한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는 일도 없다. 매번 숲을 향하여 뛰어가는 것이다. 한 두번이 아니라, 수 백 수천 번. 틀림없이 평생을 두고 꿩을 좆을 것이다. 개가 사람보다 우수한 점은 후각만은 아닌 것 같다.

눈을 뜨고 현관에 나서자, 숲에는 안개가 가득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매일 아침마다 숲은 안개의 바다가 된다. 나는 안개 속에서 잠을 깨고, 안개 속에서 담배를 물고 안개 속에서 해가 솟아 오르며 안개 알갱이가 천천히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오늘은 맑을 것이다.

부지런하게도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온 또 다른 아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꿈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서요."
"꿈 같은 것은 없는 것이 스트레스를 안 받지."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너무 미워요. 자기들은 이렇게저렇게 꿈을 꾸고 열심히 살면서, 오빠만 해도 그렇잖아요."
"나? 내가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가?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부인데... 가끔 말타고 이 나라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꿈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가?"
"저는 그냥 이대로 살래요. 그게 제 운명 같아요."
"그런건 너무 건방진 말이지. 운명에 따르는 것처럼 하면서 자기가 정해 놓은데로 살아가려는 짓. 운명도 그리 만만치는 않아.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다음 순간이 어찌 될른지는 절대로 알 수 없거든."

창을 넘어 온 햇살은 재털이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 놓고 손가락을 따듯하게 만든다.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듣고 있다. 이 노래를 한 번쯤 들어주어야만 가을이 제대로 된 것 같다. 뭐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되어간다. 이 노래와 가을을 연관 짓지 못하는 세대는 아직 가을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단언하곤 한다.

아침식사는 우동이다. 우동가락을 입에 물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운명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안개는 산머리로 사라지고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동작을 멈춘다.

살아가다보면 스위치를 탁! 끈 것처럼 일상이 멈추어 버리는 일이있다. 내겐 몇 번쯤 있었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흘러가는 시간.

세계의 모든 일들이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일종의 부유물이 되어 바닥을 들여다 보고 있다. 어쩌면 해파리 정도만이 이런 느낌을 알수 있을 것 같다. 해파리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우리도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다구."

하고 볼멘 소리를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나는 지금 스위치를 끄고 흐느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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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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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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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8

에리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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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내리듯
생에서의 고통도 내려지기를...

김명기님의 댓글

이런 이런 그건 죽으라는 이야기... ^~^

여백님의 댓글

-,.-"

불꺼진 방안에서 창밖으로 은은히 비춰오는 달빛 별빛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을 더 뚜렷히 볼 수 있다눈....말인듯..

"불을 끄세요"
"들여다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으~~ 전생체험....
-,.-"

넝담 넝담!!
^,.^

잿빛하늘님의 댓글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그런 여유란 불혹이 넘어야 가능할까?
어쨌든 쫓기듯 살고있는건 사실이다.

김명기님의 댓글

자신의 위치를 삼인칭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의 해탈... ^~^

김명기님의 댓글

나이보다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좆을때 멈추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위치에 멈추어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문제... ^~^

에리카님의 댓글

해탈...
자신을 자신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고
이런 저런 각도에서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방을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고...

대략
난감....ㅡ.ㅡㅋ

김명기님의 댓글

그래서 우리 같은 중생들은 그저 앞만 보고 가는 것이지요. 깃발만 따라가는 여행객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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