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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마법의 가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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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가짜나라.

누워서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날씨가 너무 좋고,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일요일 아침에는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물론 늦잠이지요.) 창문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모카신의 골드의 짓궂은 햇살을 감기바이러스처럼 요리저리 피하고 미꾸라지처럼 이불 밑으로 잠복하면서 달콤한 초봄의 휴일 아침을 억지 연장 공연중입니다.

그러다 얼핏 어제 심은 철쭉에 물오른 꽃 봉우리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아직은 쌀쌀한 아침 공기 속으로 나섰네요. 테라스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이런, 역시 아직은 별 변화가 없습니다.

꿈이었나? 팔짱을 끼고 어깨를 옹송크리면서 멀리 아침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거위들이 뭘 보았는지 아침부터 ‘끼익끼익’ 소란스럽습니다. 일요일 아침입니다. 스피커에서는 ‘남가주 여관’의 실황공연이 흘러나옵니다. ‘데칼코마니’처럼 하늘을 그대로 담은 호수 위를, 가벼운 바람에 밀려가는 여유 만만한 낙엽이 되어 모처럼의 게으른 일요일 아침이네요.

지난 한 주는 게으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 바쁘게도 보낸 한주였습니다. 여기저기 새로운 모티브를 찾아 개미처럼 더듬이를 움직이며 다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가 숲에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거리감을 느꼈고, 다른 시선을 느꼈고, 세상이 변한 만큼 또 변해버린 나 자신을 느꼈습니다.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조심스레 테라스를 오릅니다. 잠시 코끝을 간질이던 커피향이 멀리 들녘으로 사라집니다. 느긋한 휴일. 바람은 오른쪽 뺨을 스치고 햇살은 왼쪽 어깨에 당신의 손길처럼 올려져 있습니다.

요즘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아무리 보아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을 봅니다. 나이 많고 부유한 사람과, 어리고 예쁜 여인. 또는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대개 그런 경우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라도 하는 듯, 그 여인을 어디에나 데리고 나타납니다. 국경도 없는 사랑인데 나이차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한눈에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저 좋은 가십꺼리 일 뿐입니다.

대개 본인들만 모르고 이 행성의모든 사람들이 다 수근거리는 일입니다. 진짜 사랑이 아닌, 목적에 의한 수단이 되어버린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되고 ‘부와 젊음’이라는 서로의 결과만을 보고 거래를 하는 가짜 관계, 가짜 사랑,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 언행자체가 점점 가짜로 여겨지고, 마침내 인간 자체가 가짜가 되어 버립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바람피울 수 있겠습니까?

제게 아끼는 모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전에도 좋은 모자는 있었지요.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서 산 아주 멋진 ‘진짜 카우보이모자’였습니다. 실은 판매점의 여직원이 ‘혼을 빼앗을 만큼’ 무시무시하게 예뻐서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다, ‘하이!’ 하고 인사를 건네며 접근하는 바람에, 그만 터무니없이 비싼 모자를 사고 말았습니다. ‘어큐브라’였든가? 그리고 그 진짜 모자는 너무 비싸고 두터워서 실제로 말을 탈 때는 잘 쓰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자주 쓰는 모자는, 월남전에서 군인들이 쓰던 것 같은 정글 모자입니다. 예전 같이 일하던 직원하나가 제게 선물한 것입니다. 남대문에서 싸게 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쩐지 싸구려 티가 나고 젊은 친구들이 유행으로 멋스럽게 쓰고 다니는 것 같아서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부담이 없으니까, 비가 오거나 승마 연습을 할 때 자주 썼습니다. 땀 냄새가 배고, 얼룩이 생기고, 훈련이 끝나면 아무데나 던져 놓았다가 툭툭! 털어서 쓰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그 모자를 쓰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440Km에 달하는 거리의 국토 종주를 했습니다. 어느 덧 그 모자는 나 자신에게는 어떤 모자와도 바꿀 수 없는 ‘진짜 모자’가 되었습니다. “어? 김 단장 그 모자는 뭡니까?”  뭔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티가 나는 지,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나는 그 모자의 질기고 편리함을 먼저 설명하고, 함께 한 11박 12일 간의 긴 여정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하신 분들도 좀더 진지한 표정이 되어 모자를 만져보며 감탄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마침내 남대문표 모자는 다른 이들도 인정하는 ‘진짜’가 되었습니다. 시간과 추억과 땀이 배어든, ‘진짜 모자’ 말입니다. ‘어큐브라’는 어느 분께 선물로 드리고 말았지요.

나를 비롯하여 남자들은 누구라도 아름다운 여인을 원합니다. 다들 인정하는 ‘진짜 미인’ 말입니다. 그러나 미인과의 시간이라고 모두 즐겁고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경쟁자와 맞서야 하고, 그 미인에 걸 맞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상적인 결합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나이가 조금 든 유명 여배우가, 세월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의 미용에만 한달에 오륙백 만원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나 미인과 살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아름다움 역시, 세월만을 살짝 감춘 가짜입니다.

또 누구나 인정하는 진짜 미인이라도, 상황이 어려워 질 때 홀연히 떠나거나, 예술이나 돈을 이유로 함부로 옷을 벗는 여인이라면, 진짜 사랑을 줄만한 상대는 아닐 것입니다. ‘여인은 보석처럼 아름다워야 하지만, 보석처럼 이손저손 옮겨 다녀서는 안 된다.’고 벌써 오래전에 선배님들이 충고한 바 있습니다. 누구라도 ‘친자 확인’ 따위를 하려고 병원을 들락거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겠지요.

서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부족한 만큼이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상대가 있습니다. 가난하거나 어려운 순간에도 마음 편히 대화하고 받아주고 함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여인 말입니다. 세월이 쌓여간 뒤 어느 순간 자신만의 가장 소중한, 시간과 추억과 땀이 배어든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노력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사랑역시 진짜였고, 주변으로부터도 그만한 인정과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늙으신 아버님의 곁에서 어머니를 이미 발견한 것처럼, 진짜미인은 나이가 함께 들어갈수록 새롭게 정이 들어가는 그런 여인입니다.

살다보면 때로 실패도 할 수 있고, 가난해 질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처럼 인생이란 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유해 지거나 가난해 진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거나, 남을 속여서라도 줄 곳 부를 노리는 기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형편에 따라 ‘가짜미소’와 ‘가짜신뢰’와 언젠가 남의 인생을 망칠 덫으로 무장한 ‘가짜 인격’을 지닌 사람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의 인생도 가짜입니다. 자신만의 진짜가 앞에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불행도 일생을 함께 하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를 보면 도로시는 마술나라에서, 두뇌는 없지만 말을 할 줄 아는 허수아비(볼저), 심장이 없는 양철로 만들어진 나무꾼(헤일리), 겁 많은 사자(라어)와 험난한 모험을 합니다. 진짜 사람인 도로시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의소원은 모두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피노키오’ 역시 그렇습니다. 피노키오는 진짜 아이가 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진짜인 우리들은 어쩐 일인지 가짜 인생을 살기위하여 별별 짓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정직하면 곧바로 손해로 연결되는 척박한 현실에서 진짜로 살기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가짜만남, 겉치레, 허풍, 거짓말... 우리는 스스로를 가짜로 만드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능력’이라는 단어를 우상으로 모시는 이상한‘마법의 가짜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비현실적인 현실입니다. 우습지요? 웃기잖아!

자기 자신을 진짜로 만드는 것. 자신의 인생을 진짜로 만드는 것. 돈이나 다른 물질 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을 진짜로 만드는 것.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땅 속 깊숙이 묻혀 기회라는 늘 꾸는 꿈에 결국 발견되지 않더라도, 때로는 고호처럼 죽어서까지도 진짜로 남는 것. 어쩌면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Israelkamakawiwo'ole 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 가 느릿하게 정적 속을 떠돕니다. 테라스에 올려둔 파란 줄무늬의 하얀 파라솔 밑에서 봄 햇살을 쬐고 있습니다. 흐음, 모처럼 진짜 휴일이네요...


들녘의 고요한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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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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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黑虎님의 댓글

삶에 있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마다 항상 만나게 되는 난관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명이 아닐까 싶네요..
마법...
순식간에 모든것을 이루어내지만
그 내면은 허무함만으로 가득차있지요..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허무속에서 그저 마법처럼 뚝딱 뚝딱
만들어가려 하며 혹사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여백님의 댓글

자신의 인생을 진짜로 만드는 것...
-,.-"

정곡을 찌르시누나...

가식으로 꽁꽁 얽어메고 살아가는 내게..

김명기님의 댓글

어쩌면 요즘은 신기루 같은 가짜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통채로 가짜라면... 정말 대단한 절망이겠지요... ^~^

똥똥이님의 댓글

글 읽기가 넘 힘이 듭니다.
모니터에 다 않나와요 가로로 제대로 다 볼려면 .. 창을 왼쪽으로 옮기면서
봐야해요 흑흑~~~
제 컴이 않따라가주는건지 제가 몰라서 그러는건지
암튼 힘들게 이리저리 옮기면서 다읽었습니다.
음....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이네요

김명기님의 댓글

이상하게 여긴 좌우로 아아주 넓게 퍼지더군요. 아마 게시판 기능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텐데... 고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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