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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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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ant

저녁 8시. 교육을 마치고 서울을 떠났다. 대구까지 4시간. 자정에 도착. 모든 것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면 결과는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다르지. 안성 휴게소를 10여 Km 앞 둔 지점에서 계기판에 뭔가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젠 제법 진행 된 노안으로 가까운 것들은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뭐지?

속도를 줄이며 안경을 벗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핸들을 똑바로 잡고 계기판을 보았다. Coolant. 아하! 냉각수가 부족한 모양이다. 음? 그럴 리가 없는데, 몇 주 전에 냉각수를 가득 보충하지 않았나? 일단 차를 갓길에 세우고, 마시려고 한통 가지고 있던 1.5L 짜리 페트병의 물을 부었다. 한 통이 다 들어갔는데도 가득차지는 않는다. 일단 경고등은 꺼졌다.

잠시 후 안성 휴게소에 들어갔다. 다시 페트병 한 통이 다 들어간다. 불안하다. 쓰레기통을 뒤져 페트병 몇 개를 구했다. 낡은 트럭에 물을 가득 채우고, 페트병에도 가득 채웠다. 안성 휴게소에서 천안 휴게소 까지 가는 도중에 또 경고등이 들어온다. 거리로 보니 약 18Km 마다 냉각수가 다 빠지는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남은 200여 km를 14~18Km 마다 한 번씩 정차하며 물을 붓고 달렸다. 대략25번쯤.

자동차 앞부분에서는 냉각수 특유의 냄새와 하얀 수증기가 뿜어 올라온다. 계기판의 온도계는 3/5 지점에서 까딱거린다. 냉각수와 온도에 집중하며 운행을 하자니 다섯 배는 더 피곤하다. 내 중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아무도 도울 수 없다. 그러나 집요한 불행만이 그 밤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입장 주변의 검은 들판에 내리치는 번갯불을 보았다. 잠시 후 거인의 음성 같은 천둥소리. 나는 그 멋진 광경에 빠져 내 처지를 잊은 채,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
나는 아직은 붐비지 않는 30번 고속도로의 공허한 밤을 보았다. 밤과 어둠. 그리고 전조등 앞으로 곧게 뻗은 길. 그게 전부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피반령 터널의 관리사무소에 성실한 직원이 밤을 새우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 물을 얻었다.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고, 열려진 문으로 컴퓨터의 푸른 화면이 그의 얼굴에 비치고 있었다.
나는 먼 곳에서 다가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커다란 화물트럭들을 보며, 그들의 피로와 그들의 희망에 동조할 수 있었다. 밤은 그들의 편이다.
나는 자정의 화서 휴게소 식당에서 우동과 라면 발을 건져 올리는 트럭 기사들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았다. 고단한 얼굴을 비추는 나른한 조명 속에서 그들은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나도 그들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언제 집에 가느냐고 늦은 저녁을 재촉하는 말들의 푸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내 책임과 말들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나는 해평면 근방의 낙동강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멀리 도시의 불빛은 강줄기를 따라 빛나고 있었다. 별 없는 밤. 고독한 시간. 어둠 속의 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언제 오세요? 큰일이네요. 피곤하시면 쉬시고 졸지 마세요.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준 당신. 새벽 2시 30분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걱정과 염려를 함께해 준 당신의 음성. 나는 내 중년의 사랑을 다시 확인했다. 삶은, 고난이라는 기본 구성요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때로 상상보다 열두 배는 더 그렇다.

도착 직후 트럭은 완전히 탈진 한 듯, 라디에이터 그릴 쪽으로 긴 수증기를 내뿜었다. 나는 차가운 계곡물에 뛰어들어 뜨거워진 몸을 식혔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잠의 계곡으로 빠지고 말았다. 꿈속에 검은 들판의 번갯불은 계속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아마 웃으며 잠들었을 거다.


고성(古城) 아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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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smilebus님의 댓글

흐헛... 위험한.... 상황이었군요... 설마 고속도로에서.... 냉각수가!!

그까이꺼대충(암컷)님의 댓글

여전히 ... 살고싶어지는 글입니다...

고생하셨어요...^^

yjgreen님의 댓글

삶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 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이러한 삶 속에서 인생을 멋지게 즐기시는 것 같아 살아가시는 모습이 궁금해 가끔 들어와 보는 것이 저의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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