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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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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지금은 없어졌지만 나는 3.1 고가 도로를 질주한 적이 있어.

그래요? 무슨 일로요?
그 때 나는 과민성 대장염이었지.
과민성 대장염?
응?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의사가 그랬나요?
아니. 1994년엔 누구나가 다 알았다고.
어떻게요?
이런이런, 그때 TV CF.에서 조약돌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박상규라는 가수가 맥주를 진탕 마시고 아침에 배탈이 난 사람 연기를 했어. 아하! 과민성 대장염! 이라고 하지. 그리고 듀스파타린 이라는 약을 먹는 거야.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 지고 말끔해지지. 그 당시엔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그 광고를 믿었지. TV에서 그랬어! 라는 말은 일종의 보증 수표인 때였으니까. 봐, 나는 아직도 그 약 이름을 기억하잖아? 초기 치매인 주제에.
그렇군요.
나는 젊었고, 열심히 일했고, 매일 술을 퍼마셨지. 그리곤 새벽부터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가야만 했어.
불쌍하군요.
그땐 그런 생각 절대 안했지. 바쁜 것 = 좋은 것. 이라는 등식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개발도상 중진국의 일하는 청년이었으니까.
그래서요?
상계동에서 서울역 앞에 있는 다른 회사의 실무진과 회의가 잡혀있었지. 오전 9시 30분에. 내가 택시를 타고 3.1 고가 도로에 진입했을 때가 8시 20분. 그리고 그 빌어먹을 택시는 9시 10분까지 그 위에 있었지. 파푸아 뉴기니의 거북이처럼 정확히 10 센티씩 전진하면서. 그리고 소식이 온 거야.
소식?
응. 그 당시의 나는 정확했지.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야했어. 다만 술을 많이 마시면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야. 그런 건 규칙적인 일상을 소화해야만 하는 샐러리맨의 수치야. 대개는 우유 1L를 한 번에 마시고, 5분만에 뱃속의 모든 것을 좍좍 쏟아 내곤했지. 그런데 그날은 잘 안됐어. 할 수 없이 그냥 출근했는데, 합승한 택시 안, 주차장이 되어버린 3.1 고가 도로 위에서 소식이 온 거야. 갑자기.
저런.
이마에 땀이 솟고,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섰어. 귀에서는 모차르트, 레퀴엠 '라크리모사(Lacrimosa)' 가 울려 퍼지는 거야. 괄약근으로부터 5초마다 경보가 울리더군. 나는 5분 이내에 화장실로 가야만했지. 생각해봐. 수트를 잘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채, 해맑은 봄날의 3.1 고가 도로 위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음... 엄청 곤란했겠네요.
택시기사에게 대충 택시비를 쥐어주니까,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군, 그리고 나는 넥타이를 날리면서 3.1 고가 위를 뛴 거야. 정말 위급상황이었거든. 줄지어 선차들이 창문을 내리고 환호를 지르더군. 영문도 모르면서. 난 이렇게 정신 나간 놈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딱 2분 후에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어.
어떻게요?
청계천 2가 쪽의 램프를 따라 도로로 내려가서 제일 가까운 호텔로비로 뛰어 들어갔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금쪽같은 20초 이내에, 내가 어디로 뛰어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지. 그때.
그때?
호텔 도어맨이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르쳐 주더군. 화장실. 그야말로 핑거 포스트였지. 아마 나 같은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었나봐. 나는 순간적으로 뛰었어. 그리곤 12초 만에 안락한 좌변기 위에 앉아서 내가 주어진 모든 위기를 쏟아내고 극복해 냈지. 실은 뛰는 덴 5초만 소비했고 나머지 7초 동안은 빌어먹을 허리띠를 풀었어. 어찌나 안 풀어지는지..
호호호...
느긋하게 조간신문까지 훑어보고 화장실을 나왔더니, 그 도어맨이 나를 보고 고개를 까딱하며 눈짓을 보내더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래요?
응 1990년대의 전반기는 그런 시기였어. 다들 앞만 보고 뛰었지. 뛰는 대로 돈을 긁어모았고. 자신의 인생에 처음 나타난 것들을 열심히 사냥했어. 멋진 자동차, 새 아파트, 예쁜 여자. 저녁이면 축제를 벌이고 맥주를 꿀꺽꿀꺽 퍼마셨고, 새벽에 일어나 과민성 대장염에 시달렸지. 그리고 또 세상을 향해 뛴 거야.
행복했나요?
그땐 몰랐어. 그냥 바빴지.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고 그럴 시간이 없었어. 그러면 뒤에 처지고 말지. 다들 뛰니까 나도 뛰는 거야. 모두들 뛰어! 라고 말했어. 국가 전체가 마라톤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뛰고 있었지. 사람들이 뛰는 곳엔 반드시 돈이 있었고.
호오
지금 돌아보면 행복했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몰라도, 정말 재미있었어. 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도, 배탈이 나서 설설 기어도, 마냥 즐거웠어. 그땐 그랬지. 어쩌면 지난 시절이라서 즐거운 기억만 남은 것이지도 모르고.
제법 즐거운 시절이었나 보네요.
사람의 기억에 늘 즐거운 것만 남는다는 것은 인류의 BIOS를 설계할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인 것 같아. 안 그러면 누가 살아남으려고 하겠어? 인생이라는 고해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흑백으로 바뀌고,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도 일부 그리워지지. 그 힘든 고난 속에서도 꿀 같이 단맛을 쪽쪽 빨게 되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그건 그래요.
우리 모두는 원래부터 행복한 사람들이지. 일단 태어나면 행복한 기억만 남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너두 다시 뛰어봐. 그러고 있지 말고.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변화는 없어. 실패하면 어때? 아무리 다양한 괴로움도 결국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텐데. 젊을 때 이것저것 열심히 경험하는 게, 나이 들어 더 많은 좋은 추억을 가진 풍요로운 인생이지. 자! 그러니 다시 뛰어! Run!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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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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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2

창이님의 댓글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변화는 없어. 실패하면 어때?

김명기님의 댓글

홍성해님의 댓글

실패하지 않고 성공만 있다면 그것이 과연 성공인지...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sm-moon님의 댓글

요즘 들어선 실패가 두렵다기보단...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까봐 두렵단 생각이 들어요
욕심이 많아져서 겠지요~

그냥 바빴고.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고 그럴 시간이 없었을때처럼
글 읽으면서 저도 다시 그 맘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마구 드는걸요
힘들지라도 그때가 즐거웠고 생기있고 추억도 많았었는데,,,
요즘은 자꾸 몸 편하고 이익만 따지다보니..
정작 즐기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ㅎ ㅏ ㅎ ㅏ 아직 전 청춘인데.. 완전 노친네 같이... ㅎㅎ
늦은밤 잠도 안오고 어슬렁 거리다
왠지 요즘의 저랑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감성에 젖다 갑니다
언제한번 아래 글들도 찬찬히 다 읽어봐야 겟네요..^^
편안한 밤.. ㅎㅎ

Red_Design님의 댓글

첨 와본 게시판 좋은 글이네용

김명기님의 댓글

성해님 의견에 한 표! 사람의 희노애락은 늘 전위차에 있다고 봅니다. 변화가 없다면 불행도 행복도 잘 모르겠지요. ^~^

김명기님의 댓글

--------------------------------------------------------------------------------
 

 sm-moon  님은 아마 돌아볼 줄 아는 분이시겠지요. ^~^

김명기님의 댓글

Red_Design  님. 케이먹 게시판엔 여기저기 유용한 정보와 멋진 분들이 많답니다. ^~^

가람가솔님의 댓글

자! 그러니 다시 뛰어! Run!
......
하지만 뛰지 않고 기어가는 건.... 안될까요.... -,.-;;
아~ 굼벵이보다 더 느려터져가시구선......

김명기님의 댓글

마음가짐의 문제지요. 멈추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간다는... ㅎㅎㅎ ^~^

은공님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젊을 때 이것저것 경험하고 싶어요
생각처럼 쉽진 않지만
노력해야겠어요~! 실패가 없는 인생은 재미없잖아요?!ㆅ

김명기님의 댓글

맞습니다. 은공님의 읜견에 한표! ^~^

최은정님의 댓글

3.1 고가도로가 어디인줄도 모르겠군요... ^^;;
그래도 좋은글 늘~~ 고맙습니다 ^^

이성미님의 댓글

ㅋㅋ 좋은글 감사해요~

김명기님의 댓글

이런 이런 3.1 고가가 벌써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버렸나요? 흠.... ^~^

김명기님의 댓글

이성미님께는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

창이님의 댓글

김명기님의 댓글이 많이 늘어나셨네요.
일일이....
성공만 있으면 얼매나 좋겠노.
슬픔을 알아야 슬픔을 알고 실패를 알아야 실패를 안다.
기쁨을 알아야 기쁨을 알고 성공을 알아야 성공을 안다.

우린 한가지만 잘한다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다방면으로 잘 해야 한다는 것을.
한가지만 열중하다보면?
편식들 하지마시고 골고루 잘하시기를.

김명기님의 댓글

이것도 레벨제도의 부작용(?) 중 하나일까요? ^~^

ukinon님의 댓글

좋은글 퍼갑니다. 감사

황금털님의 댓글

레벨제도는 다시금 생각을...
댓글의 홍수...

Vanessa님의 댓글

하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주변에 유혹이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애플도 나를 유혹하고 그나마 덜해졌지만 게임도 나를 유혹하고..
친구들도 만나고싶고.. 에휴 힘들다 T_T

라임님의 댓글

저도 한표 행사 하겠슴다.

딸기공주님의 댓글

어디 아프신건지....
글이 안올라오니... 왠지 걱정이되는군요...

오세원님의 댓글

아침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61.♡.101.104 2007.02.13 17:24

자료실밖에 몰랐던 KMUG. 너무너무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많네요. 생각공유 감사^^

zpdl님의 댓글

한편의 영화를 본 듯 합니다.
졸리운 오후에 다이나믹한 글 감사합니다^^

산타나님의 댓글

좋은글입니다...

앙마(인생은물들이기)님의 댓글

아침부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실패....
성공.....
실패를 알고 성공을 한다면 성공한 사람...
그런사람 다음에 실패하더라도 성공의 길고 가고,,,,
실패를 실패로 끝맺으면... 그야말고
실패한 인생이 되겠군요.....


실패를 인정하고 성공의 공부를 해야겠네요
싶패는 성공의 값비싼 수업료....

에궁.... 힘들다...

uni님의 댓글

좋은글 읽고 갑니다..^^

MACstar님의 댓글

저를 다시 뛰어보게 만들어 주는 글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아야지!

김명기님의 댓글

아프진 않습니다. 그저 노느라고 게을러져서 그렇습니다. 사진에 미치니 시간이 대량 소모되는군요. ^~^

연두두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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