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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통신

본문

산골 통신

첫 번째 소식

A목장에서 소 한마리가 한밤에 탈출을 감행했다. 소는 사료 창고를 습격해서 콩을 밤새도록 먹고는 결국 배가 터져 죽었다. A목장 주는 할 수 없이 죽은 소를 도축해서 동네사람들에게 싸게 팔기로 했다. 소고기는 한나절도 안되어 다 팔렸다고 한다.

비록 죽었을 망정, 그 소는 다른 소들은 평생 한 번도 누리지 못할 만큼 배불리 먹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필사의 탈출로 소원을 성취한 그 순간 죽은 것이다. 목장 주는 소 한 마리를 잃었고, 콩도 얼마간 손해가 났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베풀었고, 소고기도 팔아 손해를 대충 메꿨다. 산골동네는 그날 그야말로 소고기 잔치를 벌였다.

다음 소식

이번 설 명절에 기차를 타고 온 아가씨가 초면인 옆자리의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어디 가시나요?
할머니는 그 아가씨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귀가 어두워 잘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한 아가씨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물었다.
할.머.니. 어.디. 가.시.나.요?
그러자 그 할머니 매몰찬 음성으로,
그래 난 대구 가시나다. 닌 어디 가시나고?

세 번째 소식

저 식당 잘 지었재?

10억이 들었다 카더라.
호오.
그런데 주인이 9억에 팔고 튀었다.
네?
원래 여자가 주인이었는데, 그 여자 애인이 사준거라카이.
그런데 왜 튀어요?
원래 물려받은 게 많은 교육자 출신 남잔데, 여자에게 빠져서 고만 10억 짜리 식당을 지어명의를 여자 이름으로 해 준거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둘 사이가 시들해 지자, 여자가 살짝 팔아 치우고 도망간거고.

산골에도 제법 사건다운 사건이 있다. 애정과 금전. 그리고 야반도주까지. 잘 못된 사랑의 결과는 공기 좋은 산골의 대기마저 우중충한 향기의 추문으로 번진다. 이번 경우에는 모두가 희생자인 것이다. 돈을 챙겨 야반도주한 여자는 지금 웃고 있을까? 
 
네 번째 소식

내게 말을 배우시는 7순의 노인께서 말을 탄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벌써 구보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신다. 원체 성질이 급한 분이라 사고라도 날까봐 나는 노심초사인데, 정작 본인은 태연하시다.

짐승이 다 거기서 거기 제. 소싯적에 말 안 듣는 소가 있으면, 개울에 쳐 넣고는 허우적거릴 때 올라타곤 했니라.
그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천천히 하세요. 다치시면 어쩌려고.

승마를 가르쳐 드리고는 오히려 내가 쩔쩔 맨다.

그 노인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더니, 양지 바른 마을 회관 앞에 모였던 노인 분들이 한마디씩 하신다.

말 저기 별 끼 아닌가 보제? 저 영감 탄지 얼마 안 된는데 벌써 달린다카이. 말 그거 얼마고? 이참에 나도 한 번 배워볼테이.

큰 일 났다.

다섯 번째 소식

면도칼로 볼을 베어내는 듯 싸늘한 새벽, 말을 타고 오니 개 한마리가 나오지 않는다.

새끼 낳앗다카이.

개집을 들여다보니 눈도 못 뜬 강아지 네 마리가 꼬물거린다.  뜨거운 국물을 끓여다 주고 목줄을 풀어주고 부산하다.

잠시 개 나누어줄 곳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가 다시 개집에 가보았다. 어미개가 강아지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강아지는 사지를 쭉 뻗은 채, 늘어져 있다. 어미 개입에서 강아지를 빼앗아 손에 드니, 벌써 싸늘한 것이 반쯤 굳었다. 죽었네. 불쌍하게.

그때 강아지 입이 달싹인다.

아, 아직 살았다.

방에서 가장 따듯한 곳에 강아지를 옮겨와 꽁꽁 언 몸을 녹여준다. 손바닥으로 강아지 온 몸을 비벼주자, 낑 하고 소리를 낸다. 여전히 뻣뻣해진 몸이다.
결국 강아지를 배에 넣고 체온으로 녹인다. 강아지가 꼬물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점점 그 움직임이 커진다. 바늘을 뺀 조그만 주사기에 데운 우유를 넣고 먹이자, 분홍빛 코에서 조그만 우유방울이 흘러나온다. 방에서 이런 소동을 벌이고 있는 사이, 어미 개는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없어진 강아지를 찾는다. 그러다 잠깐 다시 남은 강아지를 품었다가, 또 없어진 강아지를 찾아 뛴다. 다른 개집까지 샅샅이 뒤진다.

얼었던 강아지는 몸이 완전히 녹자, 코를 킁킁거리며 어미 품을 찾는다.

따듯한 현관에 종이 박스를 놓고 거적을 깔아 준 뒤, 어미 개와 강아지를 모두 옮겨왔다. 어미 개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입에 문채, 어쩔 줄 모른다. 신발들을 정리하고 모두 자리를 비켜주자, 그제서야 박스 안에 누워 강아지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인다. 탯줄도 안 떨어진 강아지 배를 핥고, 한 마리씩 강아지 엉덩이를 밀어 자기 젖에다 대주고, 여간 정성이 아니다.

어린 것을 낳고 먹이는 모든 어미는 성모(聖母)다.

이달 산골동네에서는 소 한마리가 죽고, 강아지 네 마리 탄생했다.

마지막 소식

매일 말을 타고 산성에 오르다 보니, 산성 입구에 포장마차를 하시는 분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혹시라도 말을 타고 거드름 피운다는 말이 날까봐, 보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결과다.

커피 한잔 하이소.
아이고, 제가 지갑을 안가지고 왔네요. 다음에 다시 와서 마시겠습니다.
돈은 무신. 매일 여기까지 와서 인사한 값이제.

말에 탄 채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시며, 울창한 숲으로 감싸인 산성 도로를 천천히 내려온다. 발아래 얌전한 사바는 여전히 구름 속에 가려져 있고, 멧새 한마리가 소나무 아래 덤불 속으로 날아든다.


숲과 구름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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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0

김소연님의 댓글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맴도는 글.. 잘 읽고 갑니다...

Alex님의 댓글

시골 정자에서 듣는 마을 이야기 같아 즐겁게 읽고 갑니다. ^^

鄭煐載님의 댓글

홈페이지 같더니 좋은글 많으시든데 나중에 많이갈께요 감사합니다.

인연님의 댓글

잘보고 갑니당 ^^* 할머니대화 재미있었어요 ㅎ;

바이올렛하늘님의 댓글

언제나 좋은글 주시는 김명기님!
감사합니다.

다반향초님의 댓글

이곳은 처음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dEepBLue님의 댓글

명기님.. 오랜만이져..
새해복 많~이~ ^^

봄님의 댓글

어찌하다 들어와... 키득키득 하하하하 웃고가네요 행복합니다~~

그까이꺼대충(암컷)님의 댓글

저런 곳에서 말타고 당기시는 명기님이 너무 부럽다눈..
오늘도 맘만 저 곳에 두고
저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갑니다^^

cherrysoda님의 댓글

글만으로도 따스~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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