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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통신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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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통신 V

첫 번째 소식 - 파종(播種)기

얼음이 녹았다 싶은 첫 봄부터 산골은 바쁘다.

오늘 꼭 밭에 씨앗을 넣어야 한다카이.
며칠 늦으면 안되나요?
며칠 이르면 뿌리가 굵어지고, 며칠 늦으면 줄기가 굵어져 꽃이 펴뿐다. 한해 농사 망치는거제.
아하 그렇군요.

서울 촌놈은 매번 '아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모르는 채 평생을 잘났다고 살아온 것이다. 땅을 딛고 산다고 땅을 아는 것이 아니다. 땅을 사고팔아 부동산 재벌이 된다고, 땅을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얼치기 농부가 되어 땅과 흙, 물과 바람. 해와 달. 그간 잃어버리고 살았던 세상의 근본을 하나하나 새로 깨달아 가고 있다.

오늘, 장계현의 노래를 들으며 밭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검은 비닐을 덮었다. 만약 이 씨앗들에 파릇한 새싹을 낸다면, 나도 언젠가는 제법 쓸 만한 농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장계현의 노래들은 너무 좋았다. 나의 20년, Solitary Man,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이 말간 봄바람을 타고, 서툰 삽질을 하는 내 이마를 스친다.

두 번째 소식 - 방귀

뿡!
식사자리에서 어른이 방귀를 뀌셨다.

방구 함부로 뀌지마요. 살인납니더.
뭔 소리고?
몇 해 전에 공중목욕탕 욕조에서 방귀를 뀌었다고 시비가 붙었다카이. 방귀 뀐 여자가 따지는 여자를 둔기로 때려 죽였다 안카요? 신문에 나고 난리났다카이.
참, 날아가는 방귀를 붙잡고 시비 한 번 제대로 붙었구만, 사람들이 그리 참을성이 없어서 어쩐다노?

아침식사하다 뀐 방귀 소리가 어지간히도 심각한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그래도 정말 방귀는 조심해서 뀌어야하겠다. 목숨이 아깝다면.

세 번째 소식 - 100년 짜리 송사

올해가 2008년 이제?
네.
그럼 꼭 100년 되었다카이.
무슨 일이요?
100년전 1908년에 어떤 농부가 소를 팔러 장에 안갔나? 그런데 소시장은 꼭 파장 무렵에 거래가 된다카이. 농부는 기다리느라고 막걸리 몇 잔 먹고 취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막판에 정말 거래가 성사되어 돈을 받았지. 농부는 돈을 잃어버릴까봐 전대에 차고 위에 오버코트단추를 단단히 여미고 어두운 시골길을 휘적휘적 돌아간기라.
그래서요?
가다가 농부는 오줌이 마려워졌지. 그래서 논둑에다 오줌을 누고 돌아서려니까, 허리가 안 펴지는기라. 아무리 애를 써도 허리가 안 펴져서 그대로 병원에 갔지. 그래 의사가 보니 바지 단추를 오버 단추 구멍에 끼운기라. 어이가 없어서 단추를 끌러 주었는데, 허리를 펴려고 기를 쓰던 농부는, 단추가 풀리자 그만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어삐ㄹㅣㅆ다.
어이구 세상에.
그래 이게 누구 잘못이겠노? 그 농부가족들은 의사를 상대로 송사를 벌렸는데, 여즉 판결이 안 나고 100년째 계류중이라카이.
아니 그게 사실인가요?
누가 알겠노? 나도 들은 이야긴데...

뭐랄까? 술을 조심해라? 오버코트를 조심해라? 아무데나 오줌 누지마라? 이번 이야기는 도무지 어디서 교훈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네 번째 소식 - 똥으로 만든 비스킷

하루 종일 밭에 거름을 뿌렸다.

씨앗들이 빨아들이듯 먹고 잘 자란다카이.

30~40년 전만 해도 시골 논밭에는 인분을 뿌렸다. 봄마다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코를 못 들고 다닐 지경이었지만, 변변한 비료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당시에는 화학 비료나 살충제, 제초제 따위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인분이나 두엄을 먹고 자란 야채나 구근류가 그토록 향기롭고 맛났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기록에서 보았는데, 맥아더 원수의 상륙작전함대가 인천앞바다에 떠있을 때, 인천 쪽에서 불어오는 인분 냄새 때문에 많은 미군 병사들이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천에 상륙해서 인분을 뿌려진 논밭에서 뒹굴었다고 한다.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먹고 살려고 인분을 뿌렸고, 총탄에 맞지 않고 살려고 인분 밭을 구른 것이다.

거름을 식물이 먹고, 그 식물을 또 우리가 먹고 우리가 먹고 배설한 인분이 다시 거름이 되고 자연계는 제법 단순한 순환을 이루고 여유만만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70년대 초반 초등학교 시절에 아이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야, 아폴로 우주선에서는 똥을 싸면 수분을 완전히 말려서 비스킷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더라. 똥 비스킷.

어린마음에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나는 우주 따위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지 똥 비스킷이라니.' 그 당시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아이들에게 우주선내의 순환에 관한 교육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 진짜로 똥을 분해해서 여러 가지 성분으로 나눈 뒤, 비스킷을 만드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상당기간 우주선에서 설려면 반드시 여러 가지를 순환하며 아껴야 할 것이다.

고산씨가 우주인에서 밀려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역시 커다란 우주선이다. 우리는 지구 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인지 알 수도 없는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 이미 우주인인 우리를 누가 교체할 수 있단 말인가? 싫어도 죽기 전에는 이 지구 호에서 내릴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평생 또는 자자손손 이 지구호에서 먹고 배설하고 작물에 거름을 주고 다시 그 작물을 먹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태초부터 이미 매일 똥으로 만든 비스킷을 먹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야기가 많이 새버렸는데, 고산씨 힘내세요!

다섯 번째 소식 - 자신의 용도 파악

나는 평생을 스스로 연구나 개발, 때로 제법 쓸 만한 아이디어의 제공자로 알았다. 그러나 오늘, 상추와 비트, 야콘과 당근의 씨앗을 넣기 위해 하루 종일 3년 묵은 소똥 거름을 손수레로 날랐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그대로 소똥이 묻은 목장갑으로 훔쳐냈다.

내가 이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불신의 의문이 자꾸 뒷머리를 잡는 것을 무시하고 일단 하는데 까지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그러나 웬걸? 나는 근 40Kg에 달하는 거름을 언덕 위까지 22번 날랐다. 초봄의 메마른 밭은 점차 검고 때깔 나는 옥토로 변해갔다. 내가 하고도 참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손수레를 끄는 일과 거름을 나르는 일은 제법 상당한 노동이다. 미는 것, 끄는 것, 드는 것, 삽을 들고 허리를 돌려 수레에 거름을 싣는 것. 온몸의 근육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된다. 특히 손수레는 똑 같은 바퀴를 사용해도, 미는 것과 끄는 것이 전혀 다른 힘을 요구하고 그 효과와 결과도 다른 것을 알았다. 이것은 사업과 인간관계에도 똑 같이 적용 될 것이다.

당신은 제대로 된 농군 다리를 가졌어요.

라며 오래전 카메라로 내 다리를 찍던 조각과 여학생이 생각난다. 나는 늘 부끄러워했던 알통이 박힌 다리를 바지에서 꺼내 햇살아래 내 놓았고, 그녀는 FM2 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그렇다. 내 다리는 멋지게 쭉 곧은 연예인 다리는 아니지만, 로뎅이나 부르뎅의 생명력 넘치는 그 울퉁불퉁한 다리인 것이다.

어쨌든 오늘 나는 나 자신의 용도를 다시 알게 되었다. 단단하고 커다란 흉곽과 농군 다리를 가진 전형적인 투사형 인간인 나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쓸 만한 농부가 될 수도 있는 소양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5시가 되자, 나는 온 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며 심각한 소주 결핍을 겪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역시 나는 온전히 거룩한 농부는 될 수 없는 얼치기 무명작가인 것이다. 그래도 가능성은 보았다. 그게 어딘가?


고성(古城) 아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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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마우스님의 댓글

소주결핍증....우리 몸에 아주 필요한 증상입니다.
한잔 쭉~ 들이키시고 푹 주무십시요. 건강한 내일을 위해. ^^

헤즐럿님의 댓글

언젠가는 그렇게 건강하게 땅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시다던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솨^^

G님의 댓글

흙 밟아 본지가 언제인지..아득 합니다...

그까이꺼대충(암컷)님의 댓글

땅과 그외 작물들은... 거짓이 없다고..
내가 한 만큼 비옥한 작물도 거둘수 있고...
내가 한 만큼..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농부의 가능성을 보셨다뉘.. 정말 추카드립니다^^
나중에 농부가 되시면 우리도 초대해주세요^^
조금이라도 느껴보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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