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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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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물뿌리개가 고장 났다. 호스 끝에 장착하여 밭에 물을 주고 비월이를 씻기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는 효용가치가 높다. 이 물뿌리개는 복실이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목욕을 시키려고 비누거품을 잔뜩 낸 뒤 물뿌리개를 들이대자, 복실이는 폭주족처럼 꼬리를 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비누거품을 씻어냈는지 복실이는 진술하지 않는다. 나도 포기해 버렸다.

“담배한대 줄까? 어디서 목욕을 하고 왔어? 바른대로 말해! 순순히 부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걸?”

그렇게 어딘가 지하실을 빌리고 노란 백열전구 스탠드 빛을 강하게 얼굴에 쪼이며 취조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후론 내가 물뿌리개를 들고 어슬렁거리면 아예 50미터 이내엔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복실이가 고장을 낸 것은 아니었다. 정밀하게 보아도 이빨자국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플라스틱 재질인 이 물뿌리개는 처음 살 때부터 구조와 강도 면에서 조금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한달이 채 지나기 전에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식지를 찾은 손님들이 물을 잠그려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쩔쩔매며 나를 불러댔다. 하지만 그래도 한때의 즐거운 퍼포먼스 정도로 이해를 해 주어서 다행이지 혹시 두터운 화장을 한 여인의 얼굴이나 정장을 한 신사의 옷에 물이 뿌려진다면 그런 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하긴 두터운 화장의 여인이나 신사정장을 입은 사람은 이런 곳에 오지 않겠지. 시골에 산다는 장점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

“그래요?”

처음 샀던 가게에 가서 내용을 이야기 했다. 상점주인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한 번 짓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것을 또 샀다. 3,000원? 아무래도 지난 번 보다 1,000원이 더 비싸진 것 같다. 하지만 색상도 좀더 산뜻해진 것 같고 물 뿌리는 양을 조절하는 부분도 더 부드럽게 동작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사왔다. 그러나 웬걸? 이 물뿌리개는 아예 처음부터 물이 조금씩 새고 물이 나가는 모양도 거칠기 그지없다. 나는 상인 식 사고방식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를 한 번 팔고나서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되면, 즉시 그보다 조금 더 싼 원가의 물건을 고르고 또 관찰하는 것이다. 물론 상인의 원가절감 노력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가 문제 있는 물건을 사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 문제가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시골이니까,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은 아주 급한 물건이 아니라면 다음번엔 도시로 나가 좀더 멀쩡한 물건을 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 상점에 새로운 손님이 늘어가는 숫자와, 그 상점에서 손님이 빠져 나가는 숫자사이의 복잡한 미적분 방정식과 소문의 광고효과에 의하여, 그 상점은 간신이 현상을 유지하게 된다. 어쨌든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인구도 물건의 효용도 일단은 계속 늘어나기만 하니까 상인의 입장에서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곳이 안정단계에 들어선 선진국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소비자는 즉각 상점에 항의하고, 때로는 고발을 할 것이며 상인은 문제점 파악에 고심할 것이다.

예전에 일본 오오사카에 소재한 생산성본부에서 ‘복합가속신뢰성 시험’ 이라는 복합적으로 알쏭달쏭한 명칭의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한번 실망한 고객은 7년간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7년간 그 브랜드는 다시 찾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대략 7년 동안 그 메이커의 물건은 나쁘다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다.’
‘제작 단계에서 하자를 바로 잡지 않으면, 수습에서는 10배의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세탁기로 감자를 씻어도, 사용 설명서에 뚜렷한 주의가 없으면 역시 회사의 책임이다. 전자레인지에 목욕한 고양이를 말려도 마찬가지.’

라는 강의를 들으며 호오~ 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 전자레인지 속에 젖은 고양이라니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강의였다. 고양이는 어찌 되었을까? 끔찍하다.

어쩌면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서 그런 상인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인들의 숫자가 좀 채로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개발 도상국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명의 고객이라도 불만이 있다면 즉시 그 원인을 파악하고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본 뒤, 그 문제점을 메이커에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메이커로서는 중요한 시장자료를 얻게 될 것이다. 아니 고객에게 팔아버리기 전에 먼저 상인이 시험을 한다면 더더욱 기특한 상인이 될 것이고, 그보다 메이커 측에서 먼저 갖가지 테스트를 한다면 어떨까?

“아이구 그렇게 복잡해서야.”

라고 투덜거리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앞선 나라들에서는 이미 그런 시스템이 일반화 되어있다. 선진국민의 의식 속에는 완벽한 제품에 대한 끝없는 추구가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메이커 측에서는 커다란 돔 속에 인공으로 혹한의 겨울과 혹서의 여름을 만들어 내면서 가전제품을 시험하고 있고, 10년이 지난 제품을 수거하여 공통된 문제점을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 나온 값싼 일본제품들을 구미의 열강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고, 저가 정책으로 대충대충 넘어가며 30~40년의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젠 다릅니다. 일본제품에 조그만 하자라도 있다면 국가의 신용도에 관한 이야기가 됩니다. 중국의 저가 제품은, 옛날의 일본과 같이 가격이외의 것은 거론하지 않습니다. 중국제니까, 하고 포기하지요.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벌써 국제시장에서는 일본과 동일한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있습니다. 고객들은 엄격하게 7년의 법칙을 지킬 것입니다. 고가제품과 저가 제품사이에 양립할 틈은 없습니다.”

“이왕이면 서구 열강의 제품보다는 같은 동양권의 제품이 유럽이나 미국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건 문화와 의식에서 동질성을 지닌 부분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지금 고객만족 정도가 아니라, 브랜드인지의 시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뭐가 좋다 어떻다가 아니라, ‘SONY입니다.’ 하면 고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그런 시대 말입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경쟁자로써 또 동반자로써 한국의 기술자들도 더욱 힘을 내어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오사카 생산성 본부의 상무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산 세계최고의 제품은 그다지 다양해진 것 같지 않고, 저가의 중국제품들은 점점 그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가까운 슈퍼에라도 가면 온통 중국산이다. 게다가 이 서식지 근방의 시골에서의 고객 만족은 아직도,

“그래요?”

정도인 것이다.

‘대통령이 잘못한다. 정부가 잘못한다. 정치가와 가진 자들이 다 틀렸다.’ 라는 식의 주장에도 일리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의식이 이 정도에서 머무른다면, 국민 소득 2만 불의 선진국 진입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 될 것이다. 오늘도 고장 난 물뿌리개로 밭에 물을 주며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된 물뿌리개로 상쾌한 오전 일과를 마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러니 상점 아저씨 제발,

“그래요?”

하고 딴청을 피우지 말란 말이에요. 아저씨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이 안 되고 있다니까요? 그럼요, 정말이지 않구요...


들녘의 고요한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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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학서니님의 댓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 참고로 미국에 살고 있고 얼마전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LA근방에 거주합니다. 미국 가계에 가면 아무리 작은 가계라고 30일 동안은 현금으로 반품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Costco라는 곳(한국에도 있을걸요?)은 제가 아이들용 접이 의자를 사서 2년 가까이 지나서 반품을 해도 문슨문제냐? 그냥 사용하기 불편하다 라고 답변하면 두말없이 현금으로 반품해 줍니다. DVD payer, Frayer는 아마도 3,4번은 바꾼것 같습니다. 조금이라 이상이 있거나 마음에 않들면 여지 없이 리턴해 버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건은 99% 만족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거시서 사죠... 하지만 여기서 한국분이 운영하는 가계게 가면 대부분 커다랗게 절대 반품 불가 라는 한국말이 적혀 있습니다. 물론 영어로도 작게 적혀 있지요. 여러번 싸운적이 있는데 한국사람한테는 반품을 않해주지만 미국사람들 한테는 해주더군요. 왜냐 그들은 바로 고소해 버린다는걸 아니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런거 잘 못한는걸 자~~알 알고 있다는거지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않됀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이 선진국민이 않되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가 어디에 살더라도...

김명기님의 댓글

그러니까, 모두들 조금씩만 더 배려하고 스스로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실은 그 '모두 다' 라는 말에 몇 세기의 민도가 가로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애플에 관련 된 회사들 만이라도 우선 선진국화 된 생각을 해 주었으면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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