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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아름답고 멋졌던 것

본문

내 삶을 특정 짓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요즘의 나는 폴 오스터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치밀하지만 무미건조한 문체. 다큐멘터리처럼 천천히 일상을 훑고 지나가는 서술. 마치 개머리에 작은 카메라를 달아 놓은 것 같다. 그리고 내겐, 낡은 L.P.들, 야외, 숲, 레인지로버. 시낭송의 여전한 일상이다.

시낭송 하는 사진을 보고 부산의 한 아우님이 댓글을 남겼다.

“먼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면 너무 그리워집니다. L.P.판에서 나오는 음악을 안주삼아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온 세상이 그리 평온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그리운 시절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그랬던가? 당시 나와의 시간들이 그렇게 즐겁고 멋졌던 것일까?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내 젓는다. 오히려 멋졌던 것은 그 아우였다. 그는 첼리스트였고, 음악과 예술에 좌절한 새파랗게 빛나는 젊은이였다. 그에게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숲은 그의 영혼을 보듬어 주었다. 그는 울었다. 나는 공허한 눈으로 창 너머 어두운 숲을 바라보았다. 그의 슬픔은 내 가슴을 찔렀다.

허무한 젊은 음악가. 돌아보면 그는 멋과 낭만 그 자체였다. 그는 도피했고, 나는 그에게 소주를 부어 주었다. 그 상처를 온전히 가린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했으므로, 나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사랑했던 젊은 영혼들.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 깊은 상처에서 선혈을 흘리는 청춘들.

나는 언젠가 그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그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내 서식지의 L.P.음악과 낡은 진공관, 소주가 아니라, 진정 아름답고 멋졌던 것은 그대들, 그리고 그대들의 젊음이었노라고. 그대들의 좌절이 횃불처럼 타올라, 블랙홀처럼 깊고 검은 자작나무 숲을 훤히 밝혀주었노라고. 그대들의 젊음과 함께 해서 내가 오히려 영광이었노라고.

나는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살고 있어요. 나는 늘 그대로지. 언제든 놀러 와.”

그러나 참 쓸쓸한 말이다. 나는 여전히 10여 년 전의 고요와 적막 속에 소금 호수 위의 돌멩이처럼 놓여있다. 어쩌면 방치 된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고도(En Attendant Godot)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문득 나도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러므로 Bach 무반주 첼로곡(Six Suites) 중에서 4번 사라반드. 음악과 예술에 좌절한 새파랗게 빛나는 젊은이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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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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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park님의 댓글

따뜻하고 열정적인 삶을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예술가들은 늘 뜨거운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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