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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말들은 자유로울 때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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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말들은 자유로울 때 다툰다

http://www.newsis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48203

월요일 아침이다. 말들을 방목장에 풀어 놓는다. 말들은 신나게 방목장으로 질주한다. 천천히 걸어가도 되건만, 말들은 자유를 선사받는 그 순간 반드시 질주한다. 질주하며 허공에 뒷발질을 하고, 서로 귀를 접어가며 다툰다. 방귀를 뿡뿡 뀌어가며 서로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이 행동에서 뭔가를 파악하려 애쓴다. 어째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에 말들은 서로 위협하고 서열을 정하려 다투는가? 사람의 행동은 왜 말과 닮아 있는가? 1980년대 초 ‘서울의 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지금 내 눈 앞의 정경은 지난 세기의 목장 풍경이다. 몇 년 전 탈출한 말을 찾으려 다른 말을 타고, 마치 인디언처럼 오솔길에 난 말발굽을 추적한 적이 있다. 고생스러웠지만 너무나 즐거웠다. 나는 말을 타고 한국의 길을 7000km 이상 달렸다. 서울 시내의 길도 말을 타고 달리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나는 2014년에 살면서, 대동여지도의 옛 말길을 따라 1900년대 초 조선의 길을 말달리는 것이다. 나는 비현실의 삶 속에 머문다. 문득 현실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1990년생 매킨토시 SE/30으로 칼럼을 쓴다. 이 컴퓨터는 24살이다. 두어 쪽만 넘어가면, 한글 입력이 출근길 테헤란로 정도로 정체된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혹여 실수로 오타가 입력되면 다시 지우고 입력해 넣기가 이만저만 번거롭지가 않다. 그러니 한 자 한 자 신경 써서 입력한다. 한 칼럼을 2쪽 이상 넘기지 않는다.

돌아보면 글쓰기에 필요한 ‘느림과 절제’의 덕목을 이 매킨토시는 강제적으로 내게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SE/30으로 글쓰기를 즐겨한다. 마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소절을 소중하게 타자(打字)하는 것이다. 이렇게 느리고 불편하게 쓴 글은 어쩐지 애착이 간다. 나는 느리게 사는 것에 천착한다.

나이가 들어서? 낡은 세대라서? 생각을 해 본다. 과연 그런가? 나는 1963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만들어진 미군 반합을 여전히 사용한다. 1996년산 모토로라 스타텍을 사용한다. 1995년산 랜드로버 디펜더 90을 타다가 엔진이 자꾸 과열되어 처분했다. 휘발유 4000CC V8엔진은 이 땅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리터당 5.2km는 낭비다. 디젤 엔진의 디펜더를 다시 고려하고 있지만, 수입되지 않는다. 어쨌든 쓸 만한 오래된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해서 애플(Apple IIe)을 전용 타자기로 고려했으나, 인터넷으로 가볍게 글을 옮기는 문제 때문에 매킨토시 SE/30으로 결정한 것이다.

여전히 진공관으로 엘피(LP) 음반을 듣는다. 이번에 새로 준비한 체코산 턴테이블은 모터도 따로 전원을 켜야 한다. 마지막 곡이 끝나도 톤암(tone arm)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일이 손으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다가 스르르 잠에 빠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면 엘피(LP)는 밤새도록 지직거리며 돌아간다. 엘피(LP)의 그루브에 무리도 가지만, 턴테이블의 바늘에도 무리가 간다. 그렇게 불편함을 즐긴다. 무슨 악취미일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저런 고물(?)들로 천천히 인생을 채워간다. 하지만 무조건 낡고 불편한 것만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마라톤 타자기로 글쓰기는 이제 멈추었다. 나는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얼마간 시간이 더 지나면 오래된 물건과 나와의 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도 영문을 잘 모르는 채 낡고 오래된 물건들과 세월을 쌓아갈 것이다.

다시 방목장. 오후 5시. 말들을 다시 마방에 넣는다. 말들은 천천히 걸어서 마방으로 간다. 단 한 마리도 질주하지 않는다. 비좁게 서로 몸통이 닿는 오솔길을 가면서도 싸우지 않는다. 자유로 나아갈 때는 싸우고, 마방의 통제 속으로 갈 때는 패잔병의 조용한 걸음걸이다. 오묘하다. 어쩐지 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수용소, 그 흑백의 장면이다. 나는 말들의 습성을 보며, 무리하게도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방정식을 추정하려 할 것이다.

말들은 자유로울 때 다툰다. 나는 느린 컴퓨터를 사용하여 불편할 때, 더욱 소중하게 한 자 한 자 입력한다. 편리함과 자유로움이 제한될 때 느끼는 편안함,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21세기의 삶을 19세기의 눈으로 보기. 통제와 불편에서 느껴지는 행복. 그게 요즘 내 인생의 관찰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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