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history)

 5월이다. 5시 10분이면 창밖에 여명이 서성인다. 나는 진공관 앰프를 켜고 카잘스를 건다. 낮은 첼로 음이 새벽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10발자국을 걸어 커피를 드립한다. 첼로 음 사이로 커피향이 밀도 높게 채워진다. 지난 20년간 똑 같은 아침 풍경이다.

 섣부를 진 모르지만 요즘 다시 희망을 생각한다. 무한반복 되는 허무한 인생 쌓기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작은 일상 하나를 발밑에 쌓아 내일로 나아가기, 꿈으로 나아가기, 행복으로 나아가기. 얼 핏 간단해 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한발 한발 나아간다는 것은 내가 딛고 있는 발밑이 단단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신뢰를 갖지 못하고, 약속을 갖지 못한 현실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제 진짜 꿈을 지니게 되었다.

 무지개다리에 관해 생각한다.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고, 먼 곳을 바라보았고, 먼 곳으로 떠돌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많이 노력하는데, 왜 ‘아내와 함께 쇼핑 카트를 미는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파랑새는 늘 떠났고, 그들이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만이 공허한 가슴에 슬픈 여울로 남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보다 현명해진 것이라고 믿었다.

 인생 따위! 라며 희망을 포기할 즈음, 갑자기 삶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행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복이 우주의 끝을 돌아 나를 찾았다. 내가 실수로 행복을 피해 다니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였다. 절실한 고독과 진짜 절망을 겪은 자들만이, 그것이 전설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만이 희망과 행복의 代價(대가)다. 문득 커피향이 짙게 느껴진다. 손끝의 따스한 온기는 목을 타고 넘어가 아침을 깨운다. 

 일어나요, 나와 함께 가겠어요?
 네! 언제든, 어디든 지요.

 대답은 명료하다. 무지개다리는 가슴속에 있다. 진공관의 붉은 빛은 여명에 가려 점점 희미해진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난 한 여인의 騎士(기사)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혼돈에 맞선다. 희망이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history)가 만들어 질 것이다.


 무지개다리에 관한 보고서 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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