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우산 없이 살았다.

내게 없는 것이 무척 많겠지만, 생필품 중 대표적인 것이 하나 없다. 바로 우산이다.

나는 평생 우산 없이 살았다.

물론 젊어서 알마니니 페라가모니 한참 외모 꾸미기에 몰두했던 철없는 시절, 커다란 박쥐우산을 산 적이 있긴 하지만 주로 차에 두고 비를 맞고 다녔다.

난 비가 좋다. 그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느낌, 번들거리는 비늘의 싱싱한 물고기가 된 것 같은 데쟈뷰를 사랑한다. 나는 자연의 일부고, 비오는 풍경에 스며든다는 촉감을 아낀다. 때로 목덜미에 닿은 빗방울은 아내의 서늘한 손끝과 닮아있다.

이런 생활 방식은 삶에서도 그대로다.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하루를 행복한 기억으로 꼼꼼히 메워 나가려 한다.

나는 자동차 보험 외엔 보험도 없다. 나는 따로 비자금을 모으지 않는다. 나는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하늘의 새를 보라. 돌보는 이 없어도..." 라는 성경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다.

나의 뱃장 편한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현대인의 Urban life에 적당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 아내가 필요한 것이다. 내겐 아내가 하늘이 준비해준 우산이며 보험이고, 미래다. 어쩐지 미안한데?

나는 21세기에 여전히 Rural life를 살고 있으며, 말을 타고 어슬렁거리는 유목민의 생활방식이다. 어쩌면 모계사회에 적합한 인물일지 모른다. 오늘 아내는 무엇을 먹고 싶을까?

철없는 내게 아내를 주신 신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비를 맞는다. 마른 땅에 떨어지는 빗줄기의 팍팍한 냄새를 맡으며, 아내를 위해 장을 보러가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김치 찜에 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