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마지지(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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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민속학자이자 소설가인 '아마두 함파테 바'는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이렇게 외쳤다.

"아프리카에서 한 노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서 노인의 죽음으로 소멸되는 전통문화와 토착 지식 등 정신적 자산의 가치는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어디 아프리카뿐이랴,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이 가진 경험과 민간 지식의 양을 측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역사다. 그러나 그 지식들은 쓸모없는 죽은 지식으로 여겨지고, 과학과 IT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 가슴 속의 전통과 격식, 예절 등은 점점 더 무관심에 방치 되고 있다. 말 그대로 온데간데없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일화가 있다. 늙은 말의 지혜라는 것이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환공(齊桓公) 때의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 대부(大夫), 습붕(控朋)과 함께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했다.

그런데 뜻밖에 전쟁이 길어져 겨울에야 간신히 끝이 났다. 군대는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잃었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나이 든 말을 풀어라"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하자 곧 큰길이 나타났다. 계속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졌다. 전군이 갈증에 시달릴 때, 이번에는 습붕이 명령했다.

"개미는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남향 양지쪽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 한비자 설림 상편

이렇게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삼아 배웠다. 그야말로 '不恥下問(불치하문)'이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들은 미물들에게도 배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혜와 경험의 집합체인 바로 우리의 미래, 노인들이 지닌 지식과 경험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生老病死(생로병사)'를 막을 수 없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몸 속의 시계는 착실하게 일초일초 지나가고, 나는 노년으로 가속하며 달려간다.

지금 내가 노인을 무시하고 부인한다면, 그것은 미래의 나와 미래의 내 노년을 부정하는 모순이 될 것이다. 그들도 어제는 청춘이었다.

남의 노년을 무시하며 내 노년은 존중받기를 바라는 바보짓이 있으랴. 이제 노인들의 경험과 그들이 지닌 삶의 지혜에 집중하자.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스스로 지혜로운 인간으로 성숙되고 있는가. 소주병을 허리춤에 차고 고장 난 라디오처럼 쓸모없는 말을 웅얼거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 볼 때다.

장마철 미지근한 바람이 목 언저리를 지난다. 시간도 바람을 타고 빠르게 지난다. 책을 펴자. 지혜로운 노마(老馬)처럼 쓸모 있는 노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