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레이디 고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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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말이 함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몇 해 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탄 미녀도를 보았다. 이건 뭐지? 민망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였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11세기경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코벤트리(Coventry)를 다스렸던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아내다. 그녀의 나이 17세. 영주인 레오프릭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독재자였다. 반대로 그의 아내인 레이디 고다이버는 백성들의 사정을 배려하는 착한 귀부인이었다.

고다이버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돌아보고, 그들의 처참한 민생고가 바로 남편인 영주 레오프릭의 무리하고 탐욕스러운 세금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다이버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 정책을 바꾸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여러 번 간청했다. 그러나 남편인 영주는 오히려 그녀를 힐난했다.

"당신 말은 잘하는군. 실제로 그들의 살림살이를 위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 세금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군을 먹여 살리고, 그들을 외적으로부터 막아주고, 그들의 생활을 안정되게 지켜 줄 수 있는 것이오. 당신이 걸친 보석과 옷도 다 그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럼 보석과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을테니, 대신 백성들의 세금을 낮추어 주세요.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아야 온 나라가 평화로울 것 아닌가요?"

끈질기고 간곡한 아내의 청을 뿌리칠 방법을 생각하던 영주 레오프릭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 보석이나 옷가지로 얼마나 충당이 된다고! 당신이 완전한 벌거숭이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한번 고려해 보겠소."

고귀한 영주부인이 발가벗고 백성들이 사는 영지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치욕. 레오프릭은 아내가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생각해 꾀를 낸 것이었다. 그러나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레이디 고다이버는 치마 끝을 꽉 말아 쥐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요. 제가 옷을 벗고 말을 탄 채 영지를 한 바퀴 돌겠어요. 대신 당신은 꼭 백성들의 세금을 내려주세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코웃음 치던 레오프릭은 그러자고 약속했다. 영주 부인이 발가벗고 말을 탄 채 돌아다녀? 무슨 망신? 어림없는 이야기지.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백성들은, 레이디 고다이버의 고운 마음을 알고, 영주 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아다닐 때, 아무도 거리로 나가거나 창을 열어 훔쳐보지 않기로 맹세했다. 마침내 레이디 고다이버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체로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았다. 코벤트리는 유령의 마을처럼 정적만이 흘렀다.

그러나 이때 단 한 명, 살짝 고다이버 부인을 훔쳐 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마을의 재단사 톰이다. 톰은 저주를 받아 눈이 멀었다고도 하고, 나중에 처형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톰은 이 일화로 남몰래 엿보는 사람이나 관음증 환자의 대명사가 되어 '피핑 톰(Peeping Tom)'이라 하고, 관음증을 지칭하는 'Peeping Tomism'로 치욕적인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되었다.

어쨌든 레이디 고다이버의 숭고한 마음과 결단력에 탄복한 남편 레오프릭은, 약속대로 백성들의 세금을 낮추어 주었다. 이후 좋은 영주가 되어 아내 고다이버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노블리스오블리주, 한 여인의 裸身(나신)은 이토록 우아하고 고귀할 수도 있건만, 요즘 걸 그룹의 노출경쟁은 깃털보다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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