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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기.

본문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기.

뭐랄까? 삶을 돌아보면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 온 것 같은 기억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하지만 현실의 하루하루는 남루하고 고민스럽고 갈등의 연속이다.

이런 세월을 어떻게 살아 왔을까? 대단하다. 어쩌면 과거를 모조리 아름답게 만들어 버리는 추억이라는 마법에 의해, 우리는 강력하게 마비되고, 잊고, 그래서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힘을 내자. 오늘은 힘들지만 이 고난은 다 지나갈 거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좋은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다만 과거의 두렵고 무섭고 끔찍했던 기억들은 슬며시 사라지고, 꽃향기처럼 달콤한 기억들만 추억으로 남아,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통째로 사기다.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우리 발밑의 지구 속은 어딘지, 머리 위 우주의 끝은 있는지, 없는지, 신은 왜 눈에 안 보이는지, U.F.O.의 외계인들은 왜 만날 빙빙 돌기만 하는지, 정작 궁금한 것은 하나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기독교 신자이며 의사인 후배가 말했다. “나는 다 알아요.” 난 웃었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밤 세탁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넌다. 커피 물을 끓이며, 낡은 L.P.를 턴테이블에 올린다. Donauwellen Walzer(다뉴브강의 잔 물결) - Iosif Ivanovich 익숙한 곡이다. 김우진과의 사랑으로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이 부른 ‘사의찬미’로 알고 있다. 오늘은 a.p.wyman의 피아노곡.

결국 우리는 인류가 습득한 작은 것들마저도 가물가물 살아가고, 결국 아주 작은 자신의 세상만을 간신히 인지하고 살아간다. 감히 신의 영역이라니. 처음부터 틀려먹은 것은 아닌지, 슬며시 화가 난다.

커피 향을 머금고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평생을 헤맨 끝에 반려자를 얻었고, 비에 젖지 않을 지붕 있는 집을 얻었다.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게 차가 생겼고, 헐벗지 않을 만큼의 옷가지를 챙겼다. 나를 보고 미소 짓는 동지들도 있고, 어떤 모함에도 나를 믿어 줄 평생의 벗들도 있다. 당장에 이루어진 기도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시간이 흘러 대부분 내 소망들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소망들은 공짜가 아니었다.

소망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두려운 상처와 격랑 속에서, 하나씩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윽고 소망이 채워지면, 그 소망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엔 스스로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 현실은 과거가 되고, 과거는 회상이 되어 사라진다. 머잖아, 나 역시 사라질 운명임은 잘 알고 있다.

뚜렷한 소망이 있다. 좀 채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점점 갈망이 되어 간다. 이것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 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망하여 가지게 되면, 내 삶이 송두리째 빨려들어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차라리 다행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삶이 빨려들고, 파탄나면? 차마 상상하기 끔찍하다.

나는 기다려야 한다고 스스로 달랜다. 서둘 일이 아니다. 감이 떨어지기를 입을 벌리고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다. 어쩌면 그 바보는 현자였을지도 모른다. 늦가을 감나무는 가지가 잘 부러진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불쌍한 아이들이 한 둘 아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기다리기. 당장 내가 할 일은 이정도 일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일을 기획한다. 누군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하지만 결국 나 자신 더 잘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돌아본다.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지금 살아 온 세월을 생각하면, 나는 반드시 더 정의롭고, 모함하지 않고, 베끼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사랑 배신하지 않는 곳에서 잠시라도 살다가 죽고 싶다. 그러니 뭐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기. 

2014. 5.    광릉 숲에서.  牧馬(목마)
 

사의 찬미 (윤심덕)

황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나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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