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킨토시 SE/30 키보드 두드리는 재미에, 이것저것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다. 나이든 중년 남자의 넋두리 같아서, '이게 뭔 소리야?' 하고 시간을 내어 일독해 주신 분들께 죄송하다. 앞으로는 정제 된, 또는 잘 관리 된 이야기만 하겠다..

1987년에는 자동화 엔지니어가 많지 않았다. 거의 없었다. 학교 LAB에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애플과 외부 제어기기들이 모두, 외부에서는 상당한 고급기술이었다. 그 사실을 대학원생이던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가진 약간의 기술로 프로그램을 하면, 상상외로 감탄 해주는 분위기였다. 이러니 칭찬은 정말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으로 학과조교를 하면서, 회사에 특채 되었다. 당시 금요일 하루만, 7시간 일하고 20만원을 받았다.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기술이 그 정도로 고평가 받았던 것이다. 당시 금성계전(현 LG)의 대졸 초임이 22만원이었다. 나는 조교로 일하면서 7만원(물론 학비면제), 집에서 13만원, 애플 2 조립으로 30만원 정도의 수입이 매월 고정적으로 들어 왔다. 총합 70만원이다.

지금 돈으로 700~800만원 정도로 예상 된다. 졸업도 하지 않은 26살의 나이에 매달 그런 돈을 만지게 된 것이다. 몽땅 마셔버렸다. 저축 같은 것은 한 푼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멍청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데! 내 삶에 평생 돈 부족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멍청이가,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이래서 초년 성공은 금물이다. 살아보니 옛 어른 말씀은 진리다.

88년에는 조교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엔지니어의 길로 나섰다. 48만원이 급여였다. 물론 출장비 등은 제외다. 7개월가량 직장인으로 일하다가 사업을 차렸다. 89년에 첫 회사를 만든 것은 당시 금성계전 공장장님의 권유였다. 해서 받은 첫 프로젝트의 댓가는 3,600만원. 당시 마장동 태양아파트 19평형이 1,200만원 할 때다. 하드웨어와 비용 빼고, 아파트 두 채 값이 남았다. 소프트웨어 작업이니 그럴 수밖에. 그것도 1인 회사의 작업결과였다. 나는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엑셀 GL를 샀다.

친구가 4천만원을 투자했다. 함께 한, 두 번째 프로젝트에는 9천만원을 받았다. 1989년 이야기다. 이렇게 14년을 사업했다. 그러고도 남긴 돈이 없으니 엔지니어 최고의 바보라고 할 것이다. I.M.F.가 왔고 나는 망했다. 1998년 재규어 XJ-6를 가지고 있었지만, 휘발유 살 돈이 없어 세워두었다. 아주 제대로 망한 것이지. 어쨌든 관련 기술 쪽의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호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어떤가? 열심히 했건, 어쩌다 배운 기술이건, 지금 기술자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여자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고, 열심히 저축해라. 10명의 직원을 써야 하더라도 5명으로 줄여, 최고의 수익을 내는데 집중해라. 26명의 직원을 써 본 사람의 충고다. 대기업이 되거나, 종업원 30여명 이상의 탄탄한 기업을 만들려면, 그 때는 기술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경험은 약간의 대비책이 될 뿐이다. 나에겐 이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거지같은 독립군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다. 지금 한창 촉망 받는 엔지니어에게, 절대로 나 같은 쓰디쓴 경험이 없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하지만 주제넘은 잔소리였다면 미안하다.


Macintosh SE/30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