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을비 속 ‘성자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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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 이런 가을비는 겨울비보다 더 뼈가 시리도록 차갑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동장군의 전령이어서인지, 몸이 아직 겨울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이맘때쯤이 우리 몸이 느끼기에 가장 추운 계절 아닌가 싶다. 오후부터 갠다는 일기예보를 철석(鐵石)같이 믿지만, 역시 믿는 사람만 돌쇠(石鐵)가 되었다. 비는 오후까지도 제법 세차게 내린다.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이제 재활승마 8년째에 접어드는 중증장애아동들의 보호자분들이다. “오늘 승마 하지요?” 이 질문은, 차가운 겨울비가 오니 “오늘은 승마 안하지요?”가 아니라 “승마하지요?”다. 지난 8년간을 지독한 폭우나 기상청의 경보 특보 등이 없으면, 우리는 빠짐없이 꾸준하게 재활승마를 해온 것이다.

나는 우비를 준비하고, 따끈한 차 한 잔씩을 마련한다. 장애아동들이 승마하는 30분간 추위에 떨 보호자와 부모님을 위한 내 작은 정성이다. 뜨거운 종이컵을 손에 들고 잠시 추위를 잊어보자.

차가운 가을비는 은빛 바늘처럼 세상을 관통한다. 회색의 가을 공원도 온통 은빛 바늘이 내리꽂힌다. 방죽공원 야외운동장이 우리 재활승마 장소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거나 뜨거운 뙤약볕이 쏟아지거나 바람 불거나 달리 방법은 없다. 장애아동이나 봉사자들이나 모두 모자나 우비 등으로 각각 개인 무장(?)을 해야만 한다. 이게 현실이다. 년 간 매주 30여 명의 중중장애 아동들에게 재활승마를 실시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은 더욱 싸늘한 현실이다.

펑펑 눈이 내리는 한겨울. 빨갛게 언 맨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재활승마 하는 장애아동의 콧물을 닦아주며, 나는 가슴 속으로 울었다. 겨울 재활승마 수업을 마치고 장애아동들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한밤중에 목 놓아 통곡한 적도 있다. 이게 현실이다. 우리가 OECD 서열 몇 위를 운운하지만 대한민국 재활승마의 현실은 재활승마 지도자의 서러운 눈물이다. 

가을비 내리는 가운데 장애아동들의 재활승마 의지가 대단하다. 빠짐  없이 재활승마를 하러 출석했다. 오히려 비장애 아동들은 이유가 많다. 더워서, 추워서, 비가 와서, 학원 시간이 안 맞아서 승마시간에 빠진다. 중증장애아동들의 이 재활의지를 보면, 비장애 아동들의 핑계는 부끄러울 뿐이다. 실은 말과 승마를 가장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이런 장애아동들이다.

장애아동들을 말에 태우고, 가을비 내리는 숲과 거리를 함께 걷는 느티나무 기사단원들. 이 봉사단원들과 장애아동을 등에 태우고 묵묵히 걷는 말들을 보며 나는 진정한 성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것이 성자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 아니고 무엇이랴. 난 매번 진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매번 대한민국 재활승마의 현실이 ‘성자들의 행진’에만 매달려 있다는 것에 좌절한다. 이젠 현실적인 재활승마 정책과 대책, 방안이 절실하다. 노천에서 재활승마를 한지 벌써 8년째, 눈물도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