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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이사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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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만에 이사를 하려고 하니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군요.

오늘도 아침부터 이삿짐센터 여기저기 전화하다가, 가격대가 중구난방이라 오래전에 이사했던 업체 전화번호 찾는다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서야 예전 PCS단말기 겨우겨우 찾아서 전화하고 난리도 아니었네요. ㅎㅎ

그나저나 이삿짐센터는 정했는데, 이삿짐 박스가 문제네요. ^^;;;;
이삿짐센터에서 쓰느 퍼렁색 박스는 사자니 넘 비싸고, 종이박스는 구할 데는 있는데 짐 망가질가봐 걱정이고...에혀

혹시 이삿짐박스 보유하고 계신 서울거주 회원님들 계시면 좀 빌려주십쇼! ^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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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4

아범님의 댓글

  이삿짐박스는 왜 사려하시는지...
이삿짐센터에서 다 갖고 오지 않나요?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17:17

  포장 이사를 하지만 중요한 물건은 손수 포장하시는 경우입니까,
아니면 아예 포장 이사가 아니라 일반 이사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포장이사를 하지 않아서...
덕분에 아무리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 TV라도 박스와 스티로폼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할 때를 대비해서... ㅋㅋ
지금도 창고에 가득하다는거~

아범님의 댓글

  그나저나 언제 어디로 이사하시나요?
혹시라도 이웃이 되려나하는 기대감에... ㅋ;

允齊님의 댓글

  작년에 어찌하다 보니 연거푸 이사를 2번해서리 리빙박스인가 그거를 구입했더랬죠
그런데 문제는 포장이사하시는 분들이 그 박스마저도 함부로 다뤄서리 철제가 다 휘어지는 불상사와 더불어 상처투성이 인체로....ㅠㅠ
이삿짐센터에 말을 하면 미리 몇개 대여 가능하던데요...그걸 몰랐던 관계로...
미리 이야기하면 여유분을 빌려주더라구요....

모모님의 댓글

  이사.....언제해봤는지 기억도 안나고~~
이사란 모름지기 무족건 포장이사!!! 안그러면 여자들은 듁음입니다!!!
포장이사해도 할일이 산더미인지라~~~

결론은 울집은 박스 절대 없습니다!! ^^
이사준비 잘하세요~~

그나저나 언제 어디로 이사하시나요?
혹시라도 이웃이 되려나하는 기대감에... ㅋ;2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17:27

  그러고보니 저도 이사해본 지가 십 년도 훨씬 넘었네요~
그 전에는 3년마다 꼬박 이사를 다녔는데...
성북동 → 신림동 → 안암동 → 돈암동 → 지금 사는 곳에서 13년차...

성진홍님의 댓글

  일반이사지요.
포장이사를 몇번 해봤는데, 와이프랑 둘이 짐 싸는 것보다 못 하더라구요.
비용대비 퀄리티가 너무 안좋아서 그 이후론 포장이사 안하거든요. ㅎㅎ

예전에 캐릭터 회사 다닐 때 물류팀한테 배운 짐싸는 요령 때문에, 이삿짐 센터 사장님들도 혀를 내두르는 이삿짐 포장 실력을 가꼬 있기 때문이지요. ^^;;;

예전에 이삿짐센터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니까요. ㅋㅋㅋㅋㅋ;

박스 좀 미리 빌려볼라 했는데, 전에 거래하던데는 박스가 별로 없어서 안되다고 하더라구요. (대신 친절하고 좀 많이 싼 편입니다. ^^)

제갈짱님의 댓글

  센자님이 돈암동 사시는 군요 ㅋㅋ
저도 이번에 이사했는댕.. 수유리에서 수유리로 ㅠㅠ::
헌데 진짜 왜 박스를 구하시는거예요.. 이삿짐 센터에서 전부 가지고 오던댕..
중요한 물건도 자기들껄로 싸주던데요.. 뽁뽁이와 함께 ㅠㅠ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17:41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가 이제 30년이 막 넘어갑니다.
그중 대부분은 성북동, 안암동, 돈암동, 삼양동, 수유리에 살았더랬지요.
거기도 수유리인데...그...  한신대학교와 화계사 근처 동네에서도 살았더랬습니다. ㅋ

저도 포장이사를 싫어합니다.
꼭 비용 때문은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살림을 맡기는 것이 미덥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사하기 두어 달 전부터 마땅한 박스를 미리 모으러 여기저기로 다니곤 했습니다.
만약에 동네에 봉제 공장이나 뭐 기계 부품 공장 같은 곳이 있을 때는
그곳에서 사용하는 제품 수출용 박스를 얻어다 포장하면 괜찮더군요.

대략 이사하기 일주일 전쯤부터 슬슬 짐을 꾸리기 시작해서 전날 오전에 모두 마칩니다.
이사 전날 저녁 식사는 외식으로 때우고 달랑 이불만 깔고 자다가 아침에 이불짐만 꾸려놓으면
바로 이삿짐 차로 나르는 거지요.
이사하고 난 다음에도 바로 짐을 다 풀어헤치지는 않고
조금씩 조금씩 한 일주일 넘게 걸려서 정리를 합니다.

성진홍님의 댓글

  포장이사, 정말 미덥지 못합니다.

뭔가 프로페셔널하게 짐을 착착 싸고 옮기고 하면 좀 믿음이 갈 터인데...
이건 뭐 대충대충 퍽퍽 집어넣고 대충 끌고 가서 대충 퍽퍽 넣어 놓으니 원.... ㅎㅎ

저도 송파구내의 폐지수거소나 재활용박스 판매하는 곳을 들려서 박스를 구해서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퍼렁 프라스틱 박스를 구해보려고 한 건 테이프 바리가 영 구찮아서 였거든요. ^^;;

해외 수출하는 물건 싸듯이 모든 모서리와 코너까지 다 꼭꼭 테이프질을 하려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0

  테이핑 그것도 만일을 대비해 제대로 해놓으려면 꽤 귀찮지요~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2

  자~ 이제 늦은 저녁밥도 먹었겠다, 할 일은 전혀 없겠다, 식곤증도 약간 있겠다, 심심하겠다,
읽어볼 만한 책도 당장 없겠다, 그렇다고 지금 시간에 여기서 놀아줄 사람도 없겠다,
뭐 이러니...  결국 혼자 댓글 놀이나 하면서 밤 시간을 때워 봅시다~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3

  새 글을 써 올려 놓고 거기서 놀면 되잖습니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6

  새 글을 올려놓고 놀아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웬지 새글을 선뜻 만들어 올리는 일이 마음처럼 쉽진 않습니다.
며칠 전까지 툭하면 노래 글 만들어 올리던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내게 새 글을 쓴다는 건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라오.
다만, 요즘처럼 댓글로 떠들면서 노는 건 그래도 해볼만 합디다.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7

  그래도 이 글은 성진홍 님께서 이사와 관련해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올리신 글인데
여기다 대고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무래도 실례 아니겠습니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49

  포장 박스 구하고 계시는 성진홍님 글에 들어와서 노닥거리는 것이 다소 송구스러운 바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마땅히 따로 놀 데도 없는 제 사정을 살펴주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 거요.
놀쇠가 다른 놀쇠의 마음을 알아주는 거지, 일쇠가 설마 놀쇠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나 하겠소?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0

  그래도 그게... 이러는 게 아닌데....
'이사'에 관련 있는 이야기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0

  그건 걱정 마시라!
오늘 댓글놀이의 주제도 바로 이사에 관련된 이야기라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2

  뭐시라!
'이사'에 관련된 이야깃거리라고 해봐야 뭐 따로 시간을 내어 해볼 만한 것은 아닐 텐데...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6

  일단 들어보시오!
그럼 시작하겠시다.

'80년대 초에 서울에 올라와서 살았던 것이야 뭐 홀홀단신인 학생 시절이다보니 제대로 된 '이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상경 직후 처음엔 학교 기숙사에서 1년을 살았고 그해 겨울에 석관동에서 잠깐 살았으며
다음 해 봄부터는 수유리 84번 버스 종점 근처에서 반 년을 살다가 다시 제기동 시장 골목에서 반년을 살았고
그해 겨울부터는 삼양동 길 옆에 있는 목욕탕 옥탑에서 살다가 '84년 9월에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갖은 고생 끝에 장만했던 300여 권의, 원전을 포함한, 사회 과학 서적을 전부 후배에게 양도하고...
아마도 내 지난 일생을 통해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저 책들을 포기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소.

'88년 벽두에 다시 사회에 나와 바로 반월공단에 있는 공장에 취업하면서 안산 쪽에 살다가
다시 공장을 옮기면서 근처 다른 곳으로 또 옮겨가 살았고
이듬해 가을부터는 서울의 성북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거기서 일 년 남짓 숨어 살았습니다.

'90년 봄에는 무려 팔 년 간이나 소식이 끊어졌던 한 존엄하기 이를 데 없는 훌륭한 여성과
마침내 감격적인 재회 끝에 곧바로 신림동 산동네의 반지하방에 함께 살림을 차렸습니다.
신림동 산동네라고 해도 난곡(신림 7동) 쪽이 아니라 신림 9동 쪽이라서
당시로선 집들이 크고 신식이다보니 반지하임에도 전세 가격이 1,600만 원인가 그랬습니다.
그 동네는 소위 '녹두거리' 일대로서 그때도 고시촌으로 대단히 번성하던 곳이었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6

  호오~
'80년대에도 이사를 자주 다녔군.
주로 서울 동북 지역 일대를 아주 폭넓게 다녔구랴~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7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때는 상계동, 중계동 등의 대단위 주거지역이 조성되기 전이라서
서울 동북지역이라면 대개 지금의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1학군 지역' 일대이기도 했고...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7

  한데 당신이 살았던 지역에는 그 무렵에 지하철이 없었을 거 아니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2:59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없었지! ㅋ

'80년대 초반에는 주로 23, 26, 27, 28, 34, 38번 버스가 다니던 간선 도로 근처에 살았던 거지요.
그리고 지하철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는 지하철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1호선 밖에 없었다오.
물론 2호선의 일부 구간인 '신설동 ↔ 성수' 구간이 먼저 개통되긴 했지만 나머지 순환선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소.

그러다보니 당시 이대앞, 신촌, 홍대 일대는 온통 공사판이었고, 시내의 을지로 일대도 정말 개판이었다오.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잠실 일대에도 몇 년간 도로가 온통 차단막과 복공판으로 뒤덮혀 있었을 겁니다.
'70년대에 시작된 잠실 종합 운동장 공사도 여전히 한창이었고...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0

  아까 말하기를 성북동에서도 살았다고 했는데, 성북1동이었소, 아니면 2동이었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0

  그건 뭐하러 묻는 거요?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0

  다 이유가 있어서 묻는 거요. 대답이나 하시라.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1

  글쎄, 왜 묻냐니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2

  거...
옛날에도 성북 1동은 중산층 단독 주택이 밀집되어 있었잖소.
나중에 복원된, 혜화동쪽과 나뉘어지는, '서울성벽' 근처 동네 말이오.

한데, 성북 2동엔 약간 달동네 비슷한 곳도 있었지만
삼청터널 쪽으로 올라가면 그 유명한 성북동 330번지 일대가 펼쳐져 있지 않겠소?
만약 당신이 거기에 살았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거지. 크흐~

그 동네는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거대한 고급 주택 밀집 지역인데
설마 거기 살았던 건 아니겠지요? ㅋ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삼청각'에서 마당쇠로 일했던 건 아닌가? 으하하~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3

  이런~ 썅...
성북 1동에 살았소. 됐소?

성북 2동의 330번지 일대도 물론 자주 드나들었다오. 신문 돌리러... ㅋㅋ
당신이 말하는 그 중요한 곳, 바로 '삼청각'에도 자주 다녔소.
장군, 세도가, 재벌들, 일본인 관광객처럼 주지육림을 즐기러 간 것은 전혀 아니고, 역시 신문 돌리러... 으하하~

신문이야 주로 새벽에 돌리지만 수금이나 확장하러 다니려면 아무래도 낮에 가야하기 때문에,
오후 서너 시쯤 거길 올라가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콜택시 혹은 모범택시들이 줄지어 들어가곤 했다오.
그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는 세칭 '최고급 접대부들'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근대는 소리도 자주 들었고...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3

  듣고보니 심상치 않은 곳에 살았던 건 분명하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4

  심상치 않은 곳에 살았던 건 그곳만이 아니었소.
내가 위에서 말하기를, '제기시장' 골목에서도 살았다고 했잖소?
거기도 알고보면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는 거지요.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05

  시장 골목이야 뭐 번잡스럽고 지저분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기가 만만치 않은 곳일 이유는 특별히 없을 거 같은데...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23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니까!
얘기가 다소 길어지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들어보시오.

내가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의 어느날 오후에,
정확한 시간이 아마도 4시를 조금 넘었을 때였소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건너 시장 입구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입구 근처의 간선 도로변에 수많은 택시들이 주차되어 있는 걸 보았다오.

그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길래 유심히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옆방에 살던 동기 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쉐키가 시익~ 웃으면서 하는 말이,
시장을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 뻗어있는 곁가지 골목 구석 구석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 중에서
대학생은 오히려 소수이고 대부분은 청량리, 미아리, 성북동, 강남 일대로 출퇴근하는
유흥업소 여종업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일러주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직업 여성'들이 많이 사는 건 그렇다치고
대체 왜 택시가 이 시간에 복잡한 시장 입구에 그리도 많이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놈이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르기를, 그네들이 오후 2시쯤이면 일어나 목욕 갔다가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영업용 옷을 준비하고 나가는 시간이 대략 오후 4~5시쯤이라는 겁니다.
시장 입구의 수많은 택시들은 바로 그네들을 업소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대기하는 것이고.

내가 그 얘기를 듣고 그날부터 우리 동네 사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과연 듣던 대로 관련 직업 여성들이 무수하게 모여 살던 곳이었더란 말입니다.
어쩐지... 동네에 아이들이 잘 안 보인다 했더니... ㅋ
게다가 아무리 시장이라 하더라도 다른 곳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밥집과 반찬 가게가 많더란 말이지요.
그런 것에 반해 시장 안에 술집은 또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오.

아무튼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고 그 동네에서 계속 반 년 이상을 눌러 앉았는데
알고보니 시장 골목에는 신입생은 거의 없었고  주로 2, 3학년들이 많이 모여 살더란 말입니다.
학교 근처의 하숙, 자취 밀집 지역보다 방값이 훨씬 싼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오.

그러던 중에 그곳에는 외국인 유학생도 꽤 여러 놈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소.
외국놈이 다른 멀쩡한 주택가를 다 놔두고 하필이면 시장통에, 그것도 심상치 않은 시장통에,
굳이 찾아들어와 사는 건 대체 뭔 심보란 말인가하는 마뜩찮은 생각을 하면서 지내던 중에,
아까 그 동기 놈이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다며 어느날 저녁에 한 놈을 데리고 들어왔소.

언뜻 보기에도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였는데, 그가 비교적 유창한 우리 말로 소개하기를,
자기는 왜국에서 왔으며 나이는 서른 네 살이고 일본에서는, 거... 뭐라더라? ㅋㅋ
그때는 정말 듣도보도 못한 특이한 이름이었고 지금도 우리 나라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였는데
알고보면 꽤 명문대학이라며 알려주었던 학교 이름이...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인가 그랬고
거기서 사회학을 전공해서 석사 과정까지 마쳤으며 졸업 후엔 잠깐 사회 생활을 하다가
일찍부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늦게나마 홀홀단신으로 한국까지 건너와서
우리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막 마쳤고 지금은 국문과 박사 과정에 있다고 소개했소.

사실, 나로서는 그때가 난생 처음 왜놈을 눈앞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이었는데, 마음이 사뭇 긴장되더군.
혹시라도 무심결에라도 내 입에서 "이런 쪽빠리 쉐키가!..."하는 식으로 쏟아져 나올까봐... 크흐~
한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애초의 그런 걱정은 깨끗하게 날아가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
그는 일본에서 '60년대 말부터 급진 청년 학생 운동에 투신해서 청춘을 바쳐 나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었고
당시엔 일본 사회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조선반도 침탈과 강점에 대한 역사적인 반성에 추상같은 입장을 내보이더란 말이지.

그날부터 그와 동네 형처럼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그와 함께 동네 친구(주로 학교 동기들) 몇몇이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오.
나는 당시에 국내에서 좀처럼 구하기 어려웠던 '이와나미'나 '아오끼' 서점에서 출간된 사회 과학 관련 출판믈이나
당시 우리 나라 재야에서 저명한 시사잡지였던 월간 '세까이(世界)' 같은 것도 좀 구해줄 수 있느냐고 가끔 청했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가 잊지 않고 당대 일본 시사 잡지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찾아내서
어떤 기사는 내용을 요약해서 들려주고 몇몇 꼭지는 복사물로 건네주곤 했다오.
그가 갖고 있던 몇 권의 경제사 관련 서적도 그의 호의로 인해 비로소 실체를 접할 수 있었소.

당시 국내의 극심한 언론, 출판 통제 때문에,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관련 보도나 평론 기사조차도
아주 은밀한 경로를 통해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획득할 수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암흑천지의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생산된 한국 관련 시사 정보에 접근해보려고 저마다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하던 처지였다오. ㅋ

그런데 일찌기 청년 시절부터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또 일본에서 이수한 전공의 성격상 전문적인 수준에 올라섰던, 한 일본인 유학생이 제공하는
일본이나 구미에서 생산된 우리 나라에 관한 다양한 저작물이나 기사, 논문의 내용이라는 것은,
당시 극심한 정보 부족에 목말라했던 내게 그래도 꽤 시의적절한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오.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그를 매우 좋게 여기며 고마워하는 마음도 늘 품고 있었더랬소.

그렇게 피차 우호적이고 꽤 친밀한 사이로 지낸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소.
어느 날 점심 무렵, 그날 따라 일찍 하교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내가 시장 골목으로 막 들어선 순간,
'직업 여성'처럼 보이는 어떤 여자와 팔짱을 낀 한 남자가 히히덕거리며 지나가고 있는 걸 보았지요.

내가 무심코 흴끗 돌아보았는데, 다름 아닌 바로 그 일본인 아저씨 유학생이더라네!
나도 모르게 아는 척하려고 손을 들다가 순간 멈칫하면서 바로 고개를 돌리고 발길을 서둘렀다오.
그런데 집에 들어서면서 문득 조금 전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니,
아무래도 "서로 그렇게 가까이 스쳤는데 설마 그놈이 나를 몰라봤을 리가?"하는 생각도 문득 들더란 말이지. ㅋ

그날 저녁에 옆방에 있는 동기놈을 찾아가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그놈이 저번처럼 또 시익~ 웃으면서, "걔네들 계약 동거 중이라네, 이 사람아!"하더란 말이지요.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뭐시라! 그런 개 호로 상놈의 쉐키가! 일본에 마누라와 자식도 있다면서!" 했더니,
친구 놈이 말하기를, 몇 년 간 여기 나와 있다보니 혼자서 밤을 지내기가 외롭다나 어쩐다나,
하여튼 동거에 들어간 지 이제 한 달 조금 못 되었으니 아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이여~ ㅋㅋ"
그놈이 뒤이어 덧붙이기를, "남의 사생활이니 우린 그냥 모른 척 합세."하더란 말이지.

그걸 듣고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냥 알았다고 하면서 그 얘기를 접어두고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았고 가끔 그가 길거리에서 아는 척을 해도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지내기 시작했다오.
그놈도 눈치를 깠는지 두어 번 그러더니 드디어 저도 쌩까기 시작하더라고. ㅋㅋ
이렇게 해서 시장통에서 만난 왜놈 유학생과의 짧은 교류도 완전히 종치게 되었다는 간단한 얘기였소.

아따... 그 걸레 같은 왜놈 쉐키!
주둥아리로는 온갖 진보 담론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더니... 크하하~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46

  그 시부데기의 'Johnson'을 분질러버리거나 쌍탁을 뽑아버리지 그랬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46

  ......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47

  거기선 언제 떠났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47

  그해 겨울에 다시 미아리 옆 삼양동 길 근처의 목욕탕 옥탑으로 이사갔다오.
월세가 그게... 아마... 보증금 100에 월 5만원이었을 거요.
알고보니 목욕탕 옥탑이 나름 좋은 점도 있더군요.
겨울에 방이 잘 안 식는다는 거!
반대로, 여름엔 무지하게 덥더라네~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48

  '80년대 후반에 안산이나 그쪽에 살던 얘기도 해보시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2.04.19 23:51

  아따 이거...
야부리까는 것도 영~ 예전 같지 않네요.
갑자기 기력이 확 떨어지네, 이거.
나머지 얘기는 내일 낮에 시간이 나면 계속 해봅시다.

게다가 지금 이곳이 보수공사 중이라 그런지 간헐적인 접속 장애도 불편해서...
그러니 오늘은 이만... 크흐흐~

▦짬짬▦님의 댓글

  암튼.... 2호선 초창기엔 지하가 아니라 몽땅 지상운행이었죠.... ㅋㅋㅋㅋ
그거 타고 서울 일주하면서 자리에 누워서도 다녀봤던 기억은 납니다.... ㅎㅎ

근데, 최근 이사를 위해 박스를 팔기도 합니다만, 골판지박스가 예전보다 상당히 개선되어 에지간한 플라스틱 박스보다는 좋습니다.
동네에 따라서 조금 차이는 나지만, 대형마트에서 박스를 내놓을 때 한꺼번에 수거해와서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걸 이용해 보시는 것도 좋겠죠....

- 저는 포장이사를 합니다. 하지만, 중요물품만 직접 포장해서 옮깁니다.

쁠랙님의 댓글

  저는..............................................
집사람에게 맡깁니다..........................................................

아!!!
집에 사과 컴퓨터가 3대(노트북 포함) 있는데 그건 제가 챙깁니다.........
저의 몰래바이트 창구라서..................^^

phoo님의 댓글

  이사를~ 설레겠슴돠~ ^^;;;
저희도 담달 사무실 또 이사해야하는디 ㅡㅡ;;;
걱정임돠~
점점 늘어나는 이짐들 어찌 나를지 ㅠㅠ

치..님의 댓글

  저도 이사할 집 알아보고 다니는중인데~^^
살려고 들어왔는데 곰팡이가 말썽이라 1년도 안되어 준비중이랍니다-

퍼렁색 이사짐박스는 미리 말하면 몇개 갖다주셔요~
개인적이고 중요한 물품은 미리 싸놀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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